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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5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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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점순이 이야기 - 황시언

  • 기사입력 : 2018-09-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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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른여섯 해 만에 동기생 산행을 간다니까

    산촌으로 재혼한 점순이가 전화를 해왔다

    단체식사를 꼭 사고 싶단다

    먼 곳에서 자기 동네까지 왔으니 당연하단다

    며칠을 거절했지만 식당예약까지 해 두었으니 취소할 수 없단다



    행사 당일 점순이가 안내한 곳은 시골장터에 있는 안동찜닭이었다

    매운 맛 순한 맛에서 고르란다

    난 아주아주 매운맛 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눈 코 입에서 눈물을 쏘옥 빼내고도 티 나지 않게 먹어야 한다

    식탁을 차리던 점순이의 양손에 보호대가 소맷자락 아래로 슬몃 보였다

    선생님께 안동소주를 따르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식당을 나서는 우리들 손목마다 검정봉다리 하나씩 떨리고 있었다

    오래도록 흩어져 살다가 만나도 시간의 간극을 금세 회복하는 유년시절 동기동창은 고향과 함께 일종의 귀소 본능적 유대감으로 묶여 있는 것 같다. 이 시 속의 ‘점순이’도 일찌감치 삶의 쓴맛(결혼 실패)을 경험한 유년시절 동기생일 것인데, 다시 재기(재혼)를 했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은 지난한 삶이 오랜만에 동기생들과 선생님을 만난 반가움과 겹쳐져서 ‘선생님께 안동소주를 따르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식당을 나서는 우리들 손목마다 검정봉다리 하나씩 떨리고 있었다’는 리얼하면서도 신선한 문장을 낳아 독자의 가슴에 진한 연민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고 있다. 이 시의 핵심인 ‘검정봉다리 하나씩 떨리고’ 이미지는 ‘양손에 보호대’를 해야 할 정도로 힘든 현실을 동기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점순이’의 속마음(자존심)이나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은 ‘우리들’의 속마음 (‘눈 코 입에서 눈물을 쏘옥 빼내고도 티 나지 않게’)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뜻이리라. 불황이 IMF를 능가한다는 이번 추석명절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바들바들 떨며’ 고향을 찾았을까! 가까우면 가까워서, 멀면 멀어서 말 못하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은 고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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