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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봅시다]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송기인 신부

“부마민주항쟁 의미와 정신, 후세대에 널리 알리겠다”

  • 기사입력 : 2018-09-2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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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인 송기인 신부가 재단 운영 방향에 대해 밝히고 있다./성승건 기자/


    최근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 창립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1979년 10월 부산과 창원 (마산)에서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반대해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9년 만에 항쟁의 정신을 기리고 재조명할 기념재단이 마침내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그간 부마민주항쟁(이하 부마항쟁)은 4·19혁명 이후 학생과 더불어 평범한 시민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경우가 처음일 정도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희생자 수가 여타 민주항쟁에 비해 적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4월 혁명, 5·18민중항쟁, 6월 항쟁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히면서도, 이 중 유일하게 국가기념일조차 지정되지 않은 현실이 부족한 관심의 단적인 예이다. 진상규명 작업도 아직 미진하다.

    그렇지만 지난 2013년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이듬해 진상조사가 시작된 데 이어 올해 3월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 전문에는 항쟁의 이념이 명시되는 등 역사적 의미를 올바로 각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특히 내년은 부마항쟁 40주년이 되는 해다.

    첫발을 내디딘 재단의 초대 이사장(임기 3년)은 부산·경남 민주화운동의 대부이자 노무현·문재인 전·현직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알려진 송기인(80) 천주교 부산교구 신부가 맡았다. 지난 19일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마을에 위치한 자택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부마항쟁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으셨다. 앞서 이사장직을 수차례 고사했다고 들었다.

    ▲지난 2007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 위원장을 그만둔 이후로는 계속 현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우리 나이로) 여든이 넘었는데 당연히 젊은 사람들이 일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부마재단은 내가 1989년에 부산에 처음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초대 회장을 맡았던 인연도 있고, 부산과 창원 양쪽 지역에서 함께 부탁을 해 왔기에 젊은이들을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자리를 수락하게 됐다.

    -재단을 운영하는데 있어 핵심 목표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매우 저평가돼 온 부마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정립하고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그 정신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이를 위해 우선 진상규명과 민주시민교육 두 가지를 가장 중심에 두고 있다.

    또한 부마항쟁 정신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실현되도록 시민사회와 함께 연대하고 실천하는 일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무언가를 기념하고 계승한다는 것은 보기 좋은 박제(剝製)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그 정신이 오늘날 사람들 속에 살아 숨쉬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아야 할 부마항쟁의 의의는 무엇인가?

    ▲부마항쟁은 18년 동안 이어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종식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사건이다.

    이 항쟁을 직접 보고 크게 충격을 받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을 빌리긴 했지만, 철옹성 같았던 유신체제를 무너뜨린 것은 사실상 부산과 마산의 시민, 학생들이었다. 군부의 집권야욕으로 곧바로 민주화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에는 5·18광주민중항쟁이라는 참혹하면서도 위대한 시민항쟁으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부마항쟁은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에서 군사정권을 축출하는 투쟁을 본격적으로 연 중요한 사건이다. 8년 뒤 이어진 6월 항쟁으로 신군부가 항복선언을 하면서 군사독재는 더 이상 우리나라에 발붙일 수 없게 됐다.

    군사독재를 무너뜨렸다는 의미와 함께 부마항쟁은 조국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철저히 짓밟히고 있었던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기본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면에 내걸었던 항쟁이기도 하다.

    항쟁 당시 발표된 선언문들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들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 부산과 마산 두 지역에서 기층 민중들의 시위 참여가 매우 적극적이었던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인 대중조직운동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계기의 하나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우리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지금까지 너무나 과소평가돼 왔기 때문에 이를 재조명해 시민들에게 알리는 일은 경남과 부산의 긍지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부마항쟁 의의를 되살리기 위해선 진상규명이 중요하다. 하지만 앞서 나온 부마항쟁진상조사보고서는 부실 논란을 겪고 지금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

    ▲앞선 조사만으로는 대단히 부족해 보인다.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건부 의결된 보고서에 대해 보완 작업을 하고 있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것이 역사인데 잘못돼버리면 후세대가 제대로 된 항쟁의 정신과 의의를 배울 수 없게 된다.

    부마항쟁 관련법상의 조사기간, 조사권한 등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는데,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법이 통과되면 시민들이 만족할 만큼 조사가 이뤄져 좋은 보고서가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향후 재단을 운영함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주장, 또는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단은 부산과 경남 양 지역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만든 조직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난관에 봉착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최대한 그 차이를 조정하고 좁혀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합의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암흑의 시대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분연히 떨쳐 일어났던 그 순수한 정신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경남도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39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무척 늦게 민과 관이 함께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는 단체를 만들었고, 40주년을 앞두고 국가기념일 지정 등 그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겸허히 도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려 노력할 것이다. 이 재단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직’이 되도록 많은 관심과 조언을 부탁드린다.

    안대훈 기자 adh@knnews.co.kr

    ☞ 송기인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은?
    1938년 부산 출신으로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뒤인 1972년 사제 서품을 받고 곧바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참여해 유신독재 반대 투쟁에 나섰다. 이후 부산교회사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도 민주화와 인권투쟁에 앞장섰다. 1989년 8월 부마항쟁 10주년을 앞두고는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민주화운동정신계승 부산연대 공동대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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