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9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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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세계 여행지의 날씨

날씨가 선사하는 ‘천의 얼굴’에 홀리다

  • 기사입력 : 2018-09-1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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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여름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까. 아시안 게임의 열기, 좋은 사람들과 떠났던 휴가, 여행지에서의 기억, 혹은 그해 여름만이 간직하고 있는 의미 있는 행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올여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적어도 반의 반 정도는 변덕스러웠던 날씨를 꼽을 거라 강하게 확신한다.

    7월에서 8월로 이어진 생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폭염에 이은 태풍, 그 후엔 그 태풍보다 더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 지금 이 글을 쓰는 창 밖에도 온통 빗소리로 가득 차 있다.

    사실 날씨에 덤덤한 성격이다. 유독 추웠던 겨울도 겨울이 지나 더위가 시작되면 다시 겨울이 그리워질 테지… 하면서 넘어가는 성격이다. 가을이 온다 하면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을 ‘굳이’ 들으며 트렌치코트에 몸을 싣는 사람이 아니다. 더우면 벗으면 그만인 것을 하고 여기는, 계절이나 날씨에 무덤덤한 나였지만…. 이번 여름의 변덕은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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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완벽한 하늘을 선사한 캐나다 밴쿠버.


    커피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나로서는 날씨의 변덕은 매출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서일까. 올해 여름을 지나면서 여행에 관한 글을 쓰려다 보니 문득 폭우가 내리던 그리스 아테네, 내게 ‘RainMan(레인맨)’이라는 별명을 주었던 하와이의 비구름, 얇은 패딩을 입어야 했던 에티오피아의 저녁, 안개 끼지 않은 런던의 날씨가 생각났다.

    분명 독자들 중 누군가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설레는 곳으로 삼삼오오 여행을 갔는데 때마침 그곳의 ‘우기’가 휴가 기간과 겹쳐 햇빛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여행 내내 구름 낀 하늘, 습한 날씨에 기대와 다른 여행을 하게 되어버려, ‘나한테 왜 이래, 날씨야’라는 유서 같은 SNS 속 외마디만이 나를 위로했던 경험 말이다. 마음속에 그린 그림과는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황망하거나 당황스럽다.

    날씨 말고는 모든 것이 준비돼 있는 상황, 억울한 경험이다. 분명 누구에게나 있었을 법하고, 그게 이번 여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2012년 내가 런던에 살던 시절, 친한 동생이 신혼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계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침 당시에는 런던 관광가이드 자격증이라도 발부해주는 사람인 양 런던에 대해 구석구석 알고 있던 때라 일주일간 런던 가이드를 해줬다. 이상할 정도로 런던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로 그들의 신혼여행을 축복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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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내내 비가 와서 오히려 모든 것이 선명해 보였던 그리스 산토리니.


    입을 모아 동생 부부는 ‘런던 비 많이 온다고 해서 걱정 많이 했는데 너무 날씨가 좋아서 모든 것이 좋았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비공식 런던 여행 가이드로서 나는 생각이 달랐다. 한국에서 13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런던까지 여행을 왔는데 타워브리지 사이로 끼어 있는 스산한 안개 한 번 못 보고 가다니! 도시 전체에 수분 보충이라도 해주는 듯한 빗방울 한 번 못 맞고 가다니! 하는 생각을 했었다.

    런던에 왔다면 적어도 하루 정도는 어째서 제이케이 롤링은 ‘해리포터’라는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해리포터 안의 마법주문)보다도 더 마법 같은 작품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조용한 카페 안에서 스산한 날씨 아래 무채색 배경의 거리를 바라보며 고민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아쉬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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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 내렸던 코타키나발루의 석양.


    날씨에 대해 여유로운 마음을 가졌지만 사실 실제 겪었던 여행지에서의 날씨는 천차만별이었다. 눈이 오지 않고 춥지도 않았던 12월의 스위스, 내내 눈 뜨기도 힘들었던 폭우가 내리던 아테네, 내 마음 안은 비가 왔지만 날은 내 마음과 달리 화창했던 핀란드 헬싱키, 우비가 필요했던 영국 코츠월드, 새찬 바람만이 불던 홍콩 피크. 많은 여행을 했던 만큼 기대하지 않았던 날씨를 만났었다.

    또 그런 여행만큼이나 기대보다 더 맑고 화창한 하늘이 나를 반기는 일도 분명히 있었다. 겨우 비를 피하며 사람 머리보다 우산머리가 더 보였던 어두운 아테네를 바라보면서, 로마에서 하루만이라도 비가 왔다면 로마의 무너진 유적지들이 더욱 구슬퍼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홍콩 피크에 올라서 마천루들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여기에 비가 내리는 모습이 보고 싶다’ 생각을 했다.

    마찬가지로 울며 도망가듯 여행 갔던 핀란드에서는 내내 비가 오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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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우로 앞을 보기 힘들었던 그리스 아테네.


    좋은 날씨로 휴가를 축복해 주는 것 같은 여행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혼자 여행을 주로 했던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여행지를 대했다. 사람도 여행도 모든 계절과 모든 날씨를 다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은 여행이 아니겠는가.

    여행지에서 때로는 내 기대와 다른 날씨를 경험하게 되는 일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다. 우리가 만나게 될 여행지는 사람과도 같다. 여행지가 날씨로 변덕들을 내게 보인다면, 그 변덕에 내 기분이 어떻게 조응하느냐 하는 마음가짐이 때로는 여행을 규정하게 되는 전부가 되기도 한다.

    변덕스럽던 2018년 여름이 이제 갔고, 마침내 가을은 요란하게도 왔다. 우리는 계속 여행을 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뒤늦은 휴가를 가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여행지로 떠나기 전 ‘당신의 모든 계절을 경험해보고 싶어’라는 한마디를 마음에 간직하기를 당부한다. 여행지의 날씨가 부리는 변덕에 ‘여행지의 다양한 얼굴을 만난다’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더불어 글을 마무리하면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번 여름이 몰고 온 폭염과 태풍, 그리고 폭우에 고통받거나 피해를 입은 분들의 안녕을 기도 드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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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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