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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평범한, 지극히 평범한 규칙- 이태희(김해중부경찰서 수사과 경사)

  • 기사입력 : 2018-07-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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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만 먹어도 살이 쪄 속상하다’라는 어느 연예인의 푸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끝도 없이 삐져나오는 뱃살을 보며 그 연예인의 고충을 십분 이해하게 됐다.

    저녁을 굶어도 살이 빠지지 않는 건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뒤로하고 며칠 전 아파트 헬스장에 등록했다. 샤워장이 없으니 신던 운동화는 따로 보관하지 말고 퇴실할 때 함께 가져가란다. 운동을 하는 동안 신고 온 슬리퍼를 보관하는 신발장은 비어있거나 슬리퍼만 있어야 하건만, 첫날부터 내가 선택한 101번 신발장에는 운동화가 번듯이 놓여져 있다. 97번, 45번도 마찬가지다. 예닐곱 번의 시도 끝에 빈 곳을 겨우 찾았다. 분명 그 운동화 주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운동 후에는 보관하지 말고 가져가라는 당부를 받았을 텐데 말이다. 다시 보니 신발장 밖으로 대놓고 운동화를 보관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많은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서, 신발장과 운동하는 공간이 따로 구분돼 있지 않은 구조를 감안해 그나마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으로 ‘운동화를 보관하지 말고 가져가기’라는 규칙을 정했을 것이다. 땀 냄새가 배인 운동화를 다시 가져가는 게 그렇게 수고스러운 것인지 의아스럽다. 무슨 엄청난 도덕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규칙 아닌가.

    생활 속 자그마한 규칙마저 지켜지지 않는다면 구성원 간의 신뢰가 깨져버리고 결국 사회 신뢰 비용이 커지게 된다. 불신에 기반한 사회 패러다임은 수많은 법규를 신설하고 처벌과 규제 중심으로 재생산하는 악순환을 거치기 때문이다. 질서를 지켜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지키면 나만 손해라는 알량한 인식이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미국의 수필가 로버트 풀검은 ‘삶의 지혜는 상아탑이 아닌 유치원의 모래성에 있다’면서 어린 시절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상 약속을 지키고 규칙을 준수하는 기본적인 소양은 유치원에서, 가정의 밥상머리에서 배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거와 달리 가정교육이 약화되면서 당연시하던 것들이 특별해지고 요원해지고 있다.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밥상머리 교육만 탓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반성해야 한다.

    주변을 한 번 둘러보자. 나를 둘러싼 수많은 공동체에서 규정한 규칙이 있을 것이다. 건물 내에서 금연하기, 야간에 청소기 돌리지 않기, 차량 2부제 지키기, 사용한 운동기구는 제자리에 놓기 등등. 지극히 평범한 규칙이지 않은가. 스스로는 이미 알고 있다. 무한 경쟁 속에 이런 규칙을 지키는 게 무의미하고,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이 보이더라도 결국에는 그렇지 않다라는 사실을.

    이 태 희

    김해중부경찰서 수사과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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