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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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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보천사지, 고려 현종 때 ‘숭엄사’였다”

극동문화재연구소 정밀발굴조사 중
축조 연대·사찰명 적힌 기와 발견

  • 기사입력 : 2018-07-19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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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령군 의령읍 하리에 위치한 보천사지 삼층석탑의 축조시기가 고려 현종 시대인 서기 1011년인 것으로 확인됐다.

    의령군은 19일 보천사지 발굴현장에서 박환기 부군수, 조영제 경상대 교수(사학과), 고영훈 경상대 교수(건축학), 심광주 LH토지박물관장과 극동문화재연구원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천사지 삼층석탑 정밀발굴조사에 대한 학술자문회의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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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령읍 하리 보천사지 정밀발굴조사 자문회의에 참석한 자문단이 출토된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의령군/


    이날 자문회의에서 극동문화재연구소는 국가지정문화재 보수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한 보천사지 정밀발굴 과정에서 삼층석탑 축조 연대와 사찰명을 알려주는 명문이 적힌 기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발견된 기와에는 ‘통화 29년 숭엄사(統和卄九年嵩嚴寺)’, ‘봉림하(鳳林下)’라는 명문이 있어 보천사지 삼층석탑이 늦어도 고려 현종 이전에 건립됐음을 확인해줬다.

    통화는 요나라(거란) 성종(983~1011)기 연호로, 통화 29년은 고려 현종(1010~1031) 2년(1011)에 해당한다. 보천사는 그간 탑과 승탑의 형식을 근거로 신라 말~고려 초에 건립된 사찰로 추정됐고,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교남지’의 기록을 근거로 보천사로 불려 왔다. 이번에 ‘숭엄사’라는 명문이 확인된만큼 사찰과 삼층석탑·승탑의 명칭을 보천사에서 숭엄사로 개칭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명문에서 확인된 ‘봉림하’는 신라 말~고려 초에 유행한 선종구산문(禪宗九山門)과 관련, 현욱(玄昱)이 창시한 ‘창원 봉림산문(鳳林山門)’의 말사로 추정된다.

    이 자리서 조영제 교수는 “숭엄사라는 명문 기와가 발견된 만큼 현재 ‘보천사’에서 ‘숭엄사’로 사찰명을 바꿀 필요성이 있다”며 “전체 사역의 확인을 위해 추가 조사 필요성이 있다”는 자문의견을 제시했다.

    허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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