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17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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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이동하 휠체어 컬링 국가대표

마흔다섯 ‘휠체어 영웅’ 땀으로 쓴 ‘컬링 신화’
평창패럴림픽 4위 ‘오벤져스’ 팀원

  • 기사입력 : 2018-06-2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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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난히 추웠던 올해 겨울. 세계의 이목이 쏠린 얼음의 도시 강원도 평창은 여느 때보다 뜨거운 겨울을 났다. 자국에서 처음 열린 동계올림픽에 국민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응원했고 선수들은 이에 화답했다. 올림픽의 뜨거운 열기는 이내 패럴림픽으로 전달됐다. 휠체어를 타고 스톤을 밀어 보내는 휠체어 컬링팀을 두고 우리 국민들은 ‘오벤져스’라 명명했다. 팀원 5명의 이름이 모두 다르다는 뜻의 오성(五姓),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어벤져스’의 합성어다. 그들은 영웅이었다. 오벤져스는 예선에서 9승 2패의 성적을 거뒀고 최종 4위로 경기를 마쳤다. 목에 걸린 메달은 없었지만 영웅이 되는 분투의 과정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안겨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다섯 명의 영웅 가운데서도 유독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동하(45) 선수다. 마흔다섯에 팀의 막내가 된 그는 팀원 중 유일한 비수도권 출신이다. 동계라는 말이 선뜻 와닿지 않는 남해에서 태어나, 동계스포츠 불모지라 불리는 경남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휠체어 컬링 국가대표에 합류했다. 지난 22일 창원시립곰두리국민체육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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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 컬링 국가대표인 이동하 선수가 인터뷰 중 아내 얘기를 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휠체어에 앉아 악수를 청한 이 선수는 당당하고 다부져 보였다. 그는 수줍게 웃으며 스스로를 ‘컬링 햇병아리’로 낮춰 소개했다. 이 선수는 2012년 휠체어 컬링에 입문한 5년 차 컬링 선수로 이번 패럴림픽 국가대표 중에서 경력이 적은 축에 속한다. 하지만 그의 운동 경력은 10여 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간다. “오벤져스 중에서는 컬링에 가장 늦게 입문했으니 햇병아리라 할 수 있죠. 컬링은 이제 5년 차예요. 컬링을 하기 전에는 론볼이라는 스포츠에 푹 빠졌죠. 국가대표로 발탁될 수 있었던 것도 론볼 덕분입니다.”

    론볼(lawn bowling)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스포츠지만 서구에서는 동호인이 많은 경기 종목에 속한다. 말 그대로 잔디에서 공을 굴린다는 뜻으로 경기 방식과 룰이 컬링과 흡사하다. ‘잭’이라는 노란 공을 표적으로 삼아 잔디밭에 굴려 놓고 다음 공을 잭에 근접시켜 승부를 내는 스포츠다. 빙상에 설치된 지름 1.83m의 표적에 스톤을 가까이 놓는 컬링과는 장소 면에서만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외국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경기를 치를 수 있는 허물 없는 스포츠로 불리기도 한다.

    론볼을 시작하게 된 연유를 묻자 그의 입은 한동안 굳게 닫혔다. “불의의 사고였어요….” 그는 남해에서 태어나 초·중학교를 마쳤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처음으로 고향을 벗어났다. 병역을 마친 이 선수는 꿈에 그리던 첫 직장인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그의 부푼 꿈은 찰나였다. 진해의 한 초등학교에서 콘크리트 거푸집을 설치하던 순간 구조물이 이 선수를 덮쳤고 피할 겨를도 없이 8m 아래로 추락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하체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통제되지 않는 그의 다리를 지켜보는 것보다 8m에 불과한 높이에서 자신의 꿈과 희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정신적 추락이 그를 더욱 괴롭혔다. “활동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한순간에 몸이 불편해지니 자괴감마저 들었어요. 모든 걸 내려놓고 고향인 남해로 갔어요. 수개월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선배로부터 론볼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았어요.”

    그는 론볼에 빠져 살며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도 점차 잊어 갔다. 론볼에 매달리기를 10년여, 그는 2007년 호주에서 치러진 론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거머쥐며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좋은 일은 앞다퉈 온다고 했던가. 역경을 딛고 값진 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 선수는 그해 겨울 평생 동반자인 김인경(49)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1년 전 광주에서였다. 론볼 지도자과정을 강의하던 이 선수는 광주여성연대 간사로 있던 김씨에게 한눈에 반했다. 유독 미소가 아름다웠다는 김씨를 그는 졸졸 따라다녔다. 부산 론볼 경기장과 광주를 오가며 장거리 구애 작전에 나섰지만 김씨는 쉽사리 마음을 열지 않았다. “론볼은 밖에서 하는 운동이라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어요. 어떤 여자가 나하고 만나려 하겠어요. 친구로 지내자는 말에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냐’라며 사귀자고 했어요. 진짜 경상도식이었죠.(웃음)”

    그렇게 1년의 추억을 켜켜이 쌓고서는 결혼에 골인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았던 김씨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8년 전 건강하고 예쁜 아이를 낳았다. 이 선수가 오벤져스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내조 덕이라며 공을 돌렸다. 패럴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돼 이천 장애인체육종합훈련원과 해외를 오가며 전지훈련했던 2년 동안 아내 김씨는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었다. 컬링 영웅의 영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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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2018평창동계패럴림픽 휠체어컬링대회 노르웨이전에서 이동하 선수가 스톤을 신중하게 투구하고 있다./대한장애인컬링협회/



    평창 패럴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투입된 이 선수는 노르웨이전을 희비가 교차했던 경기로 기억했다. 노르웨이전에서 차재관 선수를 대신해 투입된 이 선수는 네 번째 샷에서 하우스 안에 있는 상대 스톤 2개를 한꺼번에 내보내는 더블 테이크 아웃을 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이후에도 상대 스톤을 깔끔히 제거해 냈고 안정적으로 가드를 세우며 경기를 안정화시켰다. 중압감이 큰 탓이었을까. 이 선수는 연장 9엔드에서 실수를 범했다. 그가 던진 스톤은 연달아 호그라인을 넘어서지 못하고 제거됐다. “다른 분들은 경기 도중 투입돼 그 정도면 잘했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워요. 아무리 사람들이 많고 아이스 상태가 변해도 그것을 간파해야 하는데 실수를 했다는 게 가슴 아프고 국민들에게 죄송하기도 합니다.”

    패럴림픽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가 소속된 창원시립곰두리체육센터 컬링팀은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르기 위해 분주한 여정을 시작했다. 웨이트 운동과 팀 간 호흡을 맞춰가며 오는 7월에 있는 국가대표 선발전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국가대표 선발전은 매년 있지만 곰두리 팀은 오는 2022년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발이라는 장기적 목표를 갖고 덤덤하게 걸어 나가고 있다. 지역에 제대로 된 컬링장이 없지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곰두리 팀은 전국에서도 유명하다. 곰두리 팀은 지난 2014년 ‘제11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휠체어 컬링에서 1위에 올랐고 2015~2016년 각종 전국대회에서 2~3위를 기록했다. 팀에서는 이 선수를 비롯해 조민경 선수가 지난 2016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컬링은 팀 간 소통이 중요해요. 개인적으로는 매일 경기장에 못 가는 대신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머릿속에서 경기를 펼쳐 나가죠. 곰두리 팀에서 허리를 맡고 있는 만큼 소통에 집중해서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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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하 휠체어 컬링 국가대표.

    이 선수는 평창 패럴림픽 때 받았던 국민의 과분한 관심에 감사해하며 베이징에서 기필코 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다짐했다.

    메달을 목에 거는 것보다 중요한 일도 있다. 그는 앞으로 중도 장애를 겪는 사람들에게 멘토가 되려 한다. “저는 성격 탓에 빨리 일어났지만 막상 사고를 당하면 자괴감부터 들죠. 지금도 힘들어 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싶어요. 대단하진 않지만 저의 활약을 보면서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믿어요. 선수로서 좋은 성과를 내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줄게요.”

    박기원 기자 pk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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