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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바람’일까 ‘민심’일까- 이문재(정치부장·부국장대우)

  • 기사입력 : 2018-06-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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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는 ‘바람’이었다고 한다. 6·13 지방선거에서 경남의 정치 지형이 확 바뀌었다. 도지사뿐 아니라 시장·군수, 도의회, 시·군의회 모두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자리를 넓게 잡았다. 한 신문의 헤드라인에는 ‘밤새 세상이 바뀌었다’고 박아 놓았다. 정말 세상이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오랫동안 그것도 편안하게(?) 권력을 누렸던 보수가 몰락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경남에서는 더 그렇다. 여기서 진보·보수를 가를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무너진 보수의 돌무더기를 밟고 올라섰으니,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세력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민주당이 경남에서 거둔 성적은 ‘A’ 이상이다. 도지사, 시장·군수 18곳 중 7곳, 도의회 58석 중 34석, 시·군의회 264석 중 104석. 시군의회 중 창원 등 4곳은 민주당이 한국당보다 자리를 더 차지했거나 같았다.

    유독 ‘바람’이 거셌던 선거였다. 촛불로부터 시작된 ‘적폐 청산’은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고, 새 정권은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부조리·불합리를 찾아내고 깨뜨리면서 세(勢)를 불렸다. 반면 보수는 급작스런 바람에 맞서 기존의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려 했지만 ‘구태’나 ‘적폐’라는 주홍글씨를 지우지 못했다. 남북관계나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국제정세도 진보에 큰 도움이 됐다. 위태롭다가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며,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 악재가 될 수도 있었던 일부 후보들의 문제들도 ‘바람’에 힘없이 스러졌다. 민주당에게 ‘바람’은 훈풍이나 순풍으로 불어온 신풍(神風)과도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경남은 ‘바람’에 어느 정도 버텨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람의 마음이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좀 세긴 해도 경남은 좀 다를 것이라고 여겼다. 한때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었던 곳 아닌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확연했지만, 분위기는 분위기일 뿐, 분위기가 그대로 표로 이어지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또 다른 누구는 ‘민심(民心)’이었다고 한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김수영 시 ‘풀‘의 일부다.

    그러고 보니 ‘바람‘이 분 게 아니라 ‘민심’이 바뀐 것이다. 풀이 ‘바람’ 때문에 쓰러진 듯 보여도 그게 아니었다. ‘바람’이 불기 전 이미 ‘민심’이 변해 있었다. 풀이 누운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라 풀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바람’보다 앞서 목소리를 냈고, 또 몸짓을 했다. 풀은 누웠든 섰든 뿌리는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람’ 없이도 누울 수도 있고, 일어설 수도 있는 독립체다. 때문에 우연히 불어온 ‘바람’ 때문에 풀이 누웠다는 판단은 잘못이다.

    이제 ‘바람’으로 풀을 쓰러지게 하거나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풀은 발로 짓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존재다. ‘민심’이고, 끈질기고 영리하기 짝이 없는 생명체다. 이번 선거에 관여했던 모든 이들이 ’바람’과 ‘풀’을 편의대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 ‘바람’이 아니라 ‘풀’을 바라보는 시작점이 됐으면 한다. 한없이 낮추고 또 낮추어야 ‘풀’을 볼 수 있다.

    이문재 (정치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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