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6월 18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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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25) 동네서점 ‘진주문고’

회원10만명 보유… 지역을 위한, 지역민에 의한 30여년 ‘문화 보급소’

  • 기사입력 : 2018-05-3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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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은 방대하고 정교한 지식창고이자 풍요로운 마음의 안식을 주는 매체다. 책을 읽으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다름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 거창한 이유를 차치하고도 책은 읽는 즐거움 하나로 동서고금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책과 책방의 입지는 예전만 못하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일 만큼 큰 글씨로 ‘책’이라고 써있던 책방은 작정하고 찾지 않아도 동네마다 만날 수 있는 흔한 가게였다. 그 영광을 뒤로하고 책방은 스마트폰과 인터넷 쇼핑의 디지털 습격 탓에 그 수가 현저히 줄었고, 책 역시 영화, TV 등 ‘영상의 시대’에 밀려 뒷방 신세가 된 지 오래다. 책과 책방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상에 알리려는 듯 독특한 색깔과 경영 방식을 고집하는 책방이 있다. 인구 35만명의 도시에 1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이름난 동네서점 ‘진주문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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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문고 1층에서는 아동, 생활, 잡지 분야의 책을 볼 수 있고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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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문고 1층 카페. /김승권 기자/


    간결하고 트렌디한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진주문고의 역사는 꽤 길다. 이 책방은 1986년 경상대 앞에서 사회과학 전문서점인 ‘개척서림’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당시 진주는 서부경남의 교육과 문화를 이끄는 도시였던 만큼 서점이 60개가 훌쩍 넘어 업계의 호시절이었다. 1988년 책을 빌려주고 세미나 공간을 제공하는 출판문화정보공간 ‘책마을’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2년 지금의 ‘진주문고’라는 상호로 바꾼 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진주지역에서는 많던 서점이 점점 사라져 10여 개만 살아남았다. 그나마도 서너 개를 제외하면 참고서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다. 그러나 진주문고는 현재 진주시 평거동에 본점을, 경남MBC 진주사옥에 분점을 운영하며 꽤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30여년의 긴 시간 동안 문을 닫지 않은 비결을 물었다.


    여태훈(57) 진주문고 대표는 지역의 힘으로 버텨냈다고 했다. 여 대표는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지역주민들 덕분입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지역의 문화보급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 말을 귀담아들어 주셨거든요. 그래서 지역을 위한, 지역민에 의한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에게 진주문고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도, 찾아달라 읍소하기도 했다. 그 덕분인지 책방 매출의 80%가량을 회원들이 올려주고 있다.

    긴 시간을 이어온 까닭에 책장 사이사이 손님들의 많은 추억이 스며져 있었다. 추억을 가진 이들의 발길이 헛되지 않도록 진주문고는 설과 추석, 딱 이틀 빼고 연중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묻자 여 대표는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머릿속에 고맙고 소중한 손님들이 떠올라서일 테다. 그는 “시장 가는 엄마가 아이를 잠깐 맡겨놓거나 책값을 외상으로 부탁하는 경우는 허다했고요, 어릴 때부터 단골이던 손님이 그 나이의 자녀 손을 잡고 찾아오기도 해요. 아, 서점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네요”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박노정, 허수경 시인 등 예술인들과의 인연도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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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문고 2층에서는 청소년, 학습 분야의 책을 볼 수 있고 문화 콘텐츠를 담당하는 ‘여서재’라는 공간이 있다./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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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문고 2층 ‘여서재’. /김승권 기자/


    그는 이참에 이 가게가 명맥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이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여 대표는 “IMF 시절에 운영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당시 지역의 어르신 한 분이 진주문고를 이어가라며 이자나 차용증 없이 거금을 빌려주셨어요. 선도서 구매권을 사준 시민들도 많았고요. 그 고마움을 어떻게 잊겠어요. 받은 사랑을 갚는 방법은 좋은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주인장의 말대로 이 공간은 책을 팔지만 책만 팔지 않는 곳이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엔 ‘지역에 관한 책’, ‘오늘 처음 팔린 책’ 등 지역민들의 관심사를 주제로 한 코너가 매장 한쪽을 채우고 있다. 이를 테면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무상급식을 중단하겠다고 밝히자 학습서인 ‘개념원리 수학1’과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등을 ‘경남도지사에게 권하는 책’이라는 이름으로 진열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자 초청 강연회, 문화기행과 전시회, 인문학 음악회 등을 열고 있다. 서점을 알리려는 홍보마케팅 수준이 아니다. 말 그대로 복합문화공간을 일구고 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인기를 끌기 전부터 저자와 함께 고객들이 답사를 다녀온 기행 프로그램이 20회가 넘는다. 잘나가는 작가들도 수시로 만나볼 수 있다. 김탁환, 공지영 소설가와 박남준 시인 등이 이곳을 찾았다. 인문학 강연도 이어졌다. 작가들을 후원하고 지역에 사는 고객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누적회원 10만명 가운데 1년에 한 번이라도 책을 구입하는 고객은 7만명이 넘는다. 시민 5명 가운데 1명이 꾸준히 이곳을 찾는 셈이다. 책방은 지역민에게 받은 사랑을 갚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5개월 동안 새 단장에 나섰다. 리뉴얼 콘셉트는 책이 주인이며 지역민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 5층짜리 건물 가운데 학원으로 쓰이던 임대공간까지 모두 리모델링해 진주문고로 확장했다.


    1층엔 ‘진주커피’라는 지역색 짙은 이름의 카페와 문방구, 지역콘텐츠관과 어린이 코너가 들어섰다. 2층엔 진주문고와 트레이드마크인 문화관 ‘여서재(余書齋)’가 고객을 반긴다. 그동안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연 여서재는 이번 기회에 시민의 자유로운 연대를 꿈꾸는 ‘당신의 서재’로 거듭났다. 더 많은 인원이 유익한 강연과 전시 등을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카페 등 새로 생긴 공간에 자리를 내준 책장들은 3층에서 만나볼 수 있다. 3층 중앙매대에 문고본과 신간이 배치돼 있고 한쪽 끝엔 시집, 에세이, 예술, 소설 장르의 책이 책장에 얌전히 꽂혀 읽어줄 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삶을 비추는 등대’ 코너에는 삶의 등대가 되어줄 전집과 고전책이 자리하고 있다. 진열된 책은 2~3주 주기로 교체하는데 단골이 많은 탓에 교체주기가 빠르다고 한다. 공간들은 나무문과 나무책장, 나무테두리를 두른 시계, 나무 독서대 등 나무로 된 아이템들을 배치해 편안하고 아늑한 맛을 준다. 리뉴얼한 뒤 20~30세대 젊은고객들의 발길이 늘었다고 한다. 여 대표는 젊은 친구들에겐 흥미로운 콘텐츠가 많은데 그들에게 책으로 시선을 돌린 것 자체가 큰 변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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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문고 3층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볼 수 있다. 6·1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와 관련한 책이 편집진열돼 있다./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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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문고 3층에 진열된 선거 관련 서적. /김승권 기자/


    앞으로 이곳은 책과 관련된 콘텐츠로 꽉꽉 채워질 전망이다. 그는 “책과 결합한 콘텐츠를 어떻게 확장해서 고객에 이어주느냐가 서점사업의 미래를 결정할 거예요. 아날로그 콘텐츠를 중심으로 종이책을 만지고 보고 느낄 수 있으면서도 책에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 일환으로 4년 전부터 지역 출판사 ‘펄북스’를 운영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지역 이야기를 전달하고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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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문고 5층의 야외 공간.

    여 대표는 서점을 새단장하는 동안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정신없이 바빠서였다. 현대인들이 먹고사는 일에 치여 취미생활을 영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책은 사치를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지식과 정보의 기반이 책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니 책만큼 특별한 물성을 갖춘 물건이 없는 거죠”고 말했다. 서두에 물었던 책과 책방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 에둘러 답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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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이자 세대와 문화를 이어주는 다리이며, 지혜와 지식을 만들고 나누는 힘을 갖고 있다고 한다. 소박하지만 특별한 지역서점 ‘진주문고’는 오늘도 책이 주는 마음의 평온과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공간으로 그 소임을 다하고 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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