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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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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어머니, 어머니- 정이경(시인)

  • 기사입력 : 2018-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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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은 다양한 수식어가 뒤따른다.

    계절의 여왕, 장미의 계절답게 여기저기서 핀 아름다운 꽃이며, 곳곳에서 벌어지는 축제로 풍성한 볼거리와 함께 ‘봄의 여왕’이라 불리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근로자의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등으로 다시금 주변을 둘러보게 한다. 또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있어 은혜와 감사로 이어지는 ‘가정의 달’이기도 한 까닭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은 바쁘게 보내야 했다.

    이런 오월, 그 첫날에 영암에서 교통사고 소식이 들렸다.

    매일이다시피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일어나는지라 그리 놀라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 사고 소식은 너무 안타까웠다. 밭일을 마친 노인들을 태운 미니버스가 승용차와 충돌했고, 이 충격으로 미니버스는 도로 옆 3m 아래의 밭고랑으로 떨어졌다.

    사상자의 대부분이 여성 노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슴이 저렸다. 노인들은 대다수가 평생 농사를 지었으나 그 둘레를 벗어나지 못했고, 고령에도 생계를 위해 일을 놓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고. 또 손주들에게 줄 용돈 등 쌈짓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다녔으니.

    이번 교통사고는 차체 결함, 운전자 과실 등등의 문제는 밀쳐 두더라도 농촌 고령화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도시이건 농촌이건 고령화 문제를 새삼스럽게 거대 담론화시키지 않아도 당장 이 현실을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자식들이 떠난 농촌에서 독거노인으로서의 지난한 삶은 노쇠해진 몸피만큼이나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디게 지나가고 있다. 어쩌다 먹는 혼밥이 아니라 당연지사처럼 이어지고, 혼자 다녀야 하는 병원, 이 모든 것을 독거노인인 어머니들은 혼자서 감당해내고 있다.

    물론 농촌에도 노인정도 있고 경로당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서 편안하게 쉼을 할 수 있는 어머니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젊은이가 없는 농촌에서 노인들의 존재감은 더해 가고(?), 젊은이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농촌에서는 자연히 농사일은 노인들의 몫이 될 수밖에, 또 농촌은 도시처럼 소일거리도 없다. 타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이 용돈을 부쳐 주며 일에서 벗어나라고 하여도 노인들은 그 돈이 아까워서 아끼고 또 아끼고, 결국엔 이런 현장으로까지 내몰린다.

    어머니들은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에 미니버스를 탔을 테고 차 안에서 입담 좋은 몇몇은 유쾌한 수다도 떨었으리라. 점심으로 내오는 짜장면도 맛나게 드셨을 것이다. 열 시쯤에는 간식으로 주는 빵과 음료도 달큼했을까나? 하루 벌이를 끝내는 다섯 시에는 새벽에 집을 나설 때부터 쓴 모자며 장갑을 벗어 먼지 탈탈 털며, 밭고랑에서 나왔을 어머니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차에 올랐으리라. 집으로 돌아가는 그 노곤함 속에도 나둔 몇 마디는 또 얼마나 정겨웠을까? 깊게 팬 주름만큼 함께 정을 나누며 살았던 어머니들이여, 이제나마 세상 그 어느 곳보다 밝고 아름다운 곳에서 노인이기 이전의 어머니로, 어머니이기 이전의 여자로, 아름답게 살으시라! 어머니, 어머니들이여!

    정이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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