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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인구정책 실패가 부른 재앙- 양영석(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8-04-2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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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 출간한 자신의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반해 자원은 산술적으로 증가하므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지 않으면 자원의 부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맬서스는 인간이 무절제한 성욕 때문에 자식을 분별없이 많이 낳아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빈곤의 악순환에 허덕이게 된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그의 예측은 문명의 발달로 빗나갔다. 세계 인구는 피임법의 보편화로 산술적으로 늘어났고 식량 생산량은 농업 기술의 발달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후에 그는 잘못된 예측으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인구론> 출간 당시에는 유럽의 지배층에 널리 읽혔고 산업화 초기의 국민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쳐 다수 국가가 인구 억제정책을 시행했다.

    우리나라도 1960년대 경제개발 과정에서 이 정책을 도입했다. 6·25전쟁 이후 베이비붐으로 1970년까지 연 100만명의 출생아가 태어났다.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도 1960년에 6.0명이나 됐다. 인구가 급증하고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경제개발 초기에는 인구 억제정책이 필요했다. 인구 증가가 경제 성장보다 높으니 인구 억제로 더 잘 살아보자는 정책을 펼친 것이다.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슬로건을 외치다가 1980년대에는 ‘둘도 많다.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고 해 자녀 1명을 둔 가정은 모범이 된 반면 다자녀 가정은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이에 따라 출산율이 급락하면서 1983년에는 출산율이 인구대체 수준인 2.1명으로, 1984년에는 OECD국가의 평균 수준인 1.8명에 도달했다. 출산율 감소라는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출산 억제를 위한 가족계획 정책은 1995년까지 계속됐다. 당시 출산율은 1.6명이었다. 이미 출산억제정책을 포기하고 출산 장려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그 뒤에도 출산율은 계속 하락해 2005년에는 1.0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현안이 됐다.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약 100조원을 투자하는 등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정책 추진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여겨진다. 저출산 대책이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출산 억제 정책보다는 휠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정책과의 인과관계도 불확실하므로 종합적이고 다각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 시대를 지배한 미래 예측이 틀리는 이유는 그 내용이 지나치게 타당해서 반드시 그러한 미래가 올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예측이 옮고 그름을 스스로 측정하지 못하게 된 결과다. 사회 지도층과 수많은 대중이 널리 공유하면서 이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배적 미래 예측에는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지 못한 대가는 컸다. 우리나라는 현재의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2750년 인구가 없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받았다.

    누가 책임질 것인가.

    양영석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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