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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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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에 저항하는 독신자의 노래

진주 출신 김륭 시인, 66편의 시 담은
두 번째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 펴내

  • 기사입력 : 2018-04-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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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조각들을 구태의연하지 않게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김륭 시인이 새 시집을 내놓았다.

    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원숭이의 원숭이 (문학수첩)’는 다섯 갈래에 66편의 시를 나누어 수록했다. 독특한 제목에 대해 묻자 시인은 제목에 동그라미가 일곱 개나 들어가 보기 재밌지 않냐는 농담을 건넨 뒤에야 “혼란스러운 세상을 사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신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개인에 내재돼 있는 원숭이와 신은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인간은 누구나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원숭이의 원숭이가 아닐까 싶더라. 그래서 제목을 이렇게 지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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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처럼 이 책에는 ‘신(神)’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시가 16편이나 된다. 첫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가 자연과 일상, 가족에서 소재를 취했다면 이번 신작엔 신에 대한 저항의 노래를 담고 있다.

    원초적으로 슬픔을 타고난 인간이 신과 대등하게 맞서려면 강력한 무기가 필요한데, 시인에게 그 무기는 음악(시)이다. 인간에게 고통과 슬픔을 준 신에 대한 저항으로서 시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시인은 “神이 인간들의 땅에 보내는 고통을 모조리 알고 있는,//물의 목소리”(‘팬티’)가 시라고 말하고 있다.

    함께 살지 않고도 살을 섞을 수 있게 된다//이불 홑청처럼 그림자 뜯어내면, 그러니까/내게 온 모든 세계는 반 토막/주로 관상용이다//베란다에는 팔손이, 침실에는 형형색색의 호접난/후라이드 반 양념 반의 그녀와 나는 서로를/알면서도 모르는 척 죽었으면서도/살아 있는 척 손만 잡고,//죽음을 꺼내 볼 수 있게 된다//화분에 불을 주듯 그렇게 서로의 그림자로/피를 닦아 주며 울 수 있게 된다//神과 싸우던 단 한 명의 인간이//두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녹턴’ 전문-

    조강석 평론가는 해설에서 “신을 모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을 창조하는 것이다. 김륭 시인은 신을 창조하고 그 자리에 절대자인 ‘당신’을 놓는다. 이 ‘당신’은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아무것도 아닌 사람”(‘당신’)이다. 즉 신과의 싸움에서 사랑이 비롯되고, 그 사랑은 다시 모독해야 할 신이 된다”고 평하고 있다.

    시인이 책에 ‘연애시’가 많다고 얘기한 까닭을 이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조 평론가는 또 “지옥과 음악이 한 풀무에서 나는 것과 같은 리듬으로 슬픔과 냉소가 서로를 부양한다. 슬픔은 거리의 소멸이고 냉소는 거리로 섭생한다. 그렇게 보자면 이 시집은 배덕자의 독백이라기보다 독신자(瀆神者)의 냉소적 저항으로, 그리고 이를 환언해 독신자의 방어적 사랑으로 읽는 게 옳다. 세계가 주관 안에서 모두 소화되지 않고 언제나 잔여물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김 시인은 진주 출생으로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 동시집 ‘별에 다녀오겠습니다’·‘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 등을 펴냈으며 김달진지역문학상과 박재삼사천문학상, 지리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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