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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308) 제22화 거상의 나라 68

“여기 유대감 댁이 어디인가?”

  • 기사입력 : 2018-04-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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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는 유관에 대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았다.

    유관이 운검까지 섰다면 문무에 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운검은 행사 때 임금의 뒤에서 칼을 들고 서 있는 무인이다.

    유관은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평소에 한 번 배운 글을 종신토록 잊어버리지 않았고, 매양 밤중에 그 글을 외우며 뜻을 생각하고 항상 가난하게 사는 백성들을 돌보는 일로 평생의 업을 삼았다. 냇물을 건너기 어려운 곳에 다리를 놓고 서원이나 사당을 지으려 하는 자 있으면 돈과 베를 아낌없이 주었다. 걸인들이 찾아오면 반드시 음식과 옷을 주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자신은 비록 하찮은 물건이라도 남에게서 받지 않았다.

    “친구 사이에는 으레 재물을 서로 나누어 쓰는 의리가 있다 하나, 아예 요구하지 않는 것이 옳다.”

    유관이 평생 신조로 삼은 일이었다. 그는 학문과 무예가 뛰어났기 때문에 대제학을 두 차례 역임했다. 대제학은 영의정을 하기는 쉬워도 대제학에 오르기는 어렵다고 할 정도로 학문이 높은 사람만이 그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대제학을 두 번이나 했다.

    유관은 젊었을 때부터 벼슬을 했으나 청렴했다. 초가집 한 칸에 베옷과 짚신으로 담박하게 살았다.

    태종이나 세종에게는 <대학연의>를 강의하여 임금들로부터 스승으로 대우를 받았다.

    그가 살고 있는 동대문 밖 초가는 방이 두어 칸밖에 되지 않았고 난간도 담장도 없었다. 베풀기를 좋아하여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채소는 집 앞 텃밭에서 가꾸어 먹었다.

    하루는 조정에서 높은 관리가 유관을 찾아왔다가 허름한 베옷을 입고 밭에서 일을 하는 농부를 보았다.

    “이보게. 여기 유대감 댁이 어디인가?”

    관리가 물었으나 농부는 느릿느릿 일만 하고 있었다.

    “이놈아,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관리가 노하여 소리를 질렀다.

    “유대감이라면 성이 유씨에 이름이 관을 말하는 것이오?”

    농부가 그때서야 허리를 펴고 물었다,

    “뭣이 어째? 종놈이 어찌 감히 대감의 존귀한 성명을 함부로 입에 담느냐? 네가 죽고 싶은 것이냐?”

    관리가 펄쩍 뛰었다.

    “허어, 내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 어찌 죽는다는 것인가?”

    “그, 그럼 노인장이 전 우의정 유대감이라는 말씀입니까?”

    관리가 사색이 되어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소. 내가 전 우의정이오.”

    유관은 태연하게 대답을 하고 계속 일을 했다. 관리는 얼굴도 들지 못하고 달아나버렸다.

    유관이 청렴하고 집안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태종이 듣게 되었다.

    “유관은 참으로 청빈하게 살고 있다. 명색이 대제학을 지낸 사람이 어찌 울타리도 없는 집에 살고 있다는 말이냐?”

    태종이 선공감(繕工監)에 명을 내려 밤중에 그의 집에 울타리를 설치해 주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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