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마라도- 김시탁

  • 기사입력 : 2018-03-29 07:00:00
  •   
  • 메인이미지


    사랑에 마음을 다쳐

    상처 난 마음을 버릴 곳 없는 자는

    마라도로 가라

    모슬포 항에서 뱃길로 삼십리쯤 더

    남으로 들어가면

    상처받은 사람들 업어줄

    움츠린 등 넓은 섬 하나 있다

    그 섬에 뱃머리가 닿으면

    제일 먼저 바람이 검문을 한다

    신분증 대신 시커멓게 탄 가슴을 보여주고

    바람이 등 떠미는 곳으로 올라가라

    올라간 그곳에 절벽이 있다

    그 위에서

    아래로 던져진 마음을 보라

    허옇게 뼈까지 부서진 사랑을

    물어뜯는 파도가 있다

    추락한 꿈들이 뇌사상태일 때

    마라도의 배들은 고동을 울려

    그 영혼을 달랜다

    무엇이든 끝에 서본 자 만이

    시작을 꿈꿀 수 있다

    ☞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인 ‘마라도’ 이미지를 차용해 관념시의 위험을 깨끗이 극복해낸 시인의 기량이 돋보이는 이 시를 읽으면 바람도 없이 화르르 쏟아지던 벚꽃들이 떠오른다. 피었는가 싶으면 홀연히 져버리는 꽃잎들을 볼 때마다 벚꽃은 벚나무의 내면의 상처일 것이라고 벚나무에게 절벽은 제 몸의 밖이므로,‘상처 난 마음을 버릴 곳’을 찾아 ‘신분증 대신 시커멓게 탄 가슴을 보여 주’며 마라도의 절벽으로 가는 사내처럼, 지금 제 상처를 몸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중이라고 상상했다. 상처 없는 생이 어디 있으랴 ‘무엇이든 끝에 서본 자 만이/시작을 꿈꿀 수 있다’고 아픈 상처들일랑 절벽 아래 ‘파도의 밥으로 던져’버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절벽 끝에 서 본 사내가 육성으로 불러주는 희망가가, 혹한을 지나온 이 봄 마음의 보약 한 첩 선물받은 듯 든든하지 않은가. 조은길 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