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거부의 길] (1303) 제22화 거상의 나라 63

“왜 그러고 있어요?”

  • 기사입력 : 2018-03-26 07:00:00
  •   
  • 메인이미지


    명절 전날이라 기분이 미묘했다. 그러나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같이 있을 수 있어서 위안이 되었다.

    “피곤하면 우리 방에서 자도 돼요.”

    김진호가 하품을 하자 홍인숙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살림하는 방입니까?”

    “아니에요. 살림하는 집은 따로 있어요. 여기서 어떻게 살림을 해요? 오늘은 여기서 잘 거예요.”

    취기가 오르자 김진호는 홍인숙과 함께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단란주점 주방 쪽에 여자들이 쉬거나 대기하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방에는 이부자리가 깔려 있고 작은 텔레비전이 하나 있고 비키니 옷장이 있었다. 작고 남루했으나 이상하게 안온한 기분이 느껴졌다.

    “여기서 잘래요?”

    홍인숙이 눈웃음을 쳤다.

    “재워준다면….”

    김진호는 공허하게 웃었다. 나는 왜 명절 전날 이런 곳에 있는가. 나는 왜 유목민처럼 떠돌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퇴폐적인 곳에서 안락함을 얻는가. 스스로 질문을 했으나 답은 없었다.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누웠다. 지하여서 창도 없는 작은 방이었다. 방안에 불빛 한 점 없었다.

    여자가 미적거리고 옷을 벗었다. 그것은 남자를 방으로 들어오게 했으니 옷을 벗는 것은 당연하다는 행동이었다. 취기는 올랐으나 낯선 방 낯선 여자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잠을 청했다.

    “왜 그러고 있어요?”

    “예?”

    “잠을 이루지 못하잖아요? 내가 여자로 안 느껴져요?”

    “그런 건 아닙니다.”

    김진호는 홍인숙을 포옹했다. 홍인숙의 몸이 더워지고 있었다. 김진호는 홍인숙과 사랑을 나누었다. 새벽이 되자 김진호는 단란주점을 나와 둔촌동에 있는 사촌형네 집으로 갔다. 아파트단지 앞에 이르자 해가 떴다. 김진호는 마트에서 청주 한 병과 과일 한 박스를 샀다.

    “어서 와라.”

    사촌형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사촌 형수도 활짝 웃으면서 맞이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중학생과 고등학생인 조카들이 인사를 했다. 사촌형은 딸만 둘이라 스스로 딸딸이 아빠라고 자칭한다. 사촌형은 중학교 교사였고 형수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차례 준비는 이미 끝나 있었다.

    사촌형은 차례를 지내면서 아버지 어머니 차례를 함께 지낸다. 늘 사촌형 내외가 고마웠다. 차례를 지내고 나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