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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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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장애인 권익활동 ‘삼별초’ 남정우 대표

“지체장애1급 딛고 더불어 사는 세상 만들 것”

  • 기사입력 : 2018-02-22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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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애인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기본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대우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거주권부터 시작해 교육권과 이동권 및 보행권 등 기본적인 권리들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장애인 권리 보장의 필요성에 대해선 사회적인 이견이 없지만, 장애인들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장벽은 좀체 허물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기, 30여년간의 장애인거주시설 생활을 끝으로 자립해 우리 지역에서 이 같은 장벽을 부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애인이 있다. 장애인권익옹호활동단 삼별초 소속 남정우(49·지체장애1급) 활동가다. 남정우씨는 8살이 되던 해인 1977년 부모 손에 이끌려 서울의 한 장애인거주시설에 처음 입소했다. 그때로부터 시설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30여년이었다.

    남씨는 시설에 입소하기 전까지는 부모의 돌봄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시설 특수학교밖에는 마땅히 진학할 학교도 없었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며 “시설에 들어가면서 부모님과 의사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처음으로 내게 장애가 생긴 이유를 알게 됐다. 한 살 때 40도가 넘는 고열로 주사를 맞았는데 뇌에 쇼크가 와서 장애가 생겼다고. 태어날 때는 멀쩡했는데 한순간 장애인이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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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우 활동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사무실에서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 등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남씨는 손과 발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지만,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부모가 있고 가정도 화목해 희망이 있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빠짐없이 시설로 자신을 만나러 오던 부모의 발길이 뜸해졌다.

    그는 “자식을 시설에 보내시곤,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신 것 같았다”며 “그래서 부모님께서 둘째를 가지셨는데 동생이 태어난 지 몇 년 채 안 돼 이혼하셨다. 동생이 장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가에서 ‘집안에 며느리가 잘못 들어왔다’며 어머니를 강제로 쫓아내듯 이혼을 시킨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후 “어머니를 더는 볼 수 없었고, 점차 아버지와의 연락도 끊기고 시설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면서 가족이 없는 혼자가 됐다”고 했다.

    남씨는 그렇게 지난 2011년까지 서울과 경북 경산, 대구, 김해와 창원에 있는 수많은 시설을 거치며 34년을 지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 버림받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기댈 데가 없다는 것이 시설에서 만난 이들의 공통적인 불행이었다. 시설에서는 외부와 격리된 채 종일 규율에 따라 식사, 휴식, 각종 프로그램, 취침 등 정해진 일과가 반복된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의 유일한 꿈이었다. “장애인거주시설 안에서도 재활원이냐, 요양원이냐 시설마다 환경이 다 다르지만 외부와 격리된 채 규율에 따른다는 점은 모두 같았다. 먹으라면 먹고 씻으라면 씻고, 자라고 하면 잤다. 창살 없는 감옥의 사형수나 다름없이 살았다”며 “바깥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그저 꿈만 같은 일이었다”고 했다.

    남씨가 시설에서 나오게 된 계기는 기독교 장애인 선교단 한 목사의 제안으로 시작한 장애인공동생활가정 생활이었다. 남씨는 공동생활가정 생활을 몇 차례 거친 이후 마침내 지난 2011년 지체장애 1급인 동료 장애인과 함께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월세로 오피스텔을 얻어 시설 밖으로 나왔다. 남씨는 “여러 모로 운이 좋았다. 보증금 200만원 월세 20만원으로 집을 구하고, 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를 통해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자립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시설의 삶은 정말 불행했다. 따뜻한 부모의 역할을 하는 시설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 환경이 장애인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시설이고 필요악이라는 사실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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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우 활동가가 지난해 7월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분수광장에 휠체어 전용 이동로가 없어 무대 위로 올라가지 못하면서 장애인 전용 이동로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남씨는 자립에 성공한 이후 동료 장애인들과 함께 ‘장애인권익옹호활동단 삼별초’를 구성했다. 시설에서 나왔더니,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가기에는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너무나 많았다. 장애인 콜택시는 불러도 대답이 없어 기다리기 일쑤였고, 장애인들을 위한 저상버스도 실제 버스정류장 시설 미비 등으로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축제장이나 시내 관광지에 힘들게 찾아가더라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접근조차 어려운 현실이었다. 이에 주변 장애인들과 함께 모여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로 한 것이다. 삼별초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콜택시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해 한국장애인재단 등의 지원을 받아 저상버스 전담노선 정류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펼치기도 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예술촌의 장애인 접근성 실태조사를 하거나 마산가고파국화축제장 등에서 겪는 장애인의 불편함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며 몸소 호소했다. 이러한 노력은 시의 관련 조례 제정이나 정책에 반영되는 성과로 돌아왔다.

    남씨는 “시청이나 구청 등 관공서에 민원을 접수하러 가면 가장 먼저 듣는 말이 어느 단체에서 왔느냐는 물음이었다. 개인의 요구보다 단체의 이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애초 조직의 대표를 정하지 않고 장애인들 모두 공동대표로서 활동가란 직함으로 주변 부당하고 잘못된 환경에 대해 직접 해결해 왔지만, 활동 범위를 더욱 넓히기 위해 이번에 대표를 맡게 됐다. 올해 중으로 비영리민간단체로 등록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남씨는 당장 장애인들의 앞에 놓인 장애물들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한편, 더 많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기 계발을 하며 열정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사이버대 사회복지과를 나온 이후 편입학해 상담심리학과도 졸업했다. 사회복지사와 사진치료사, 장애인동료상담가 등 각 1급 자격증을 취득하고, 주변 장애인들에게 도움될 만한 자격증이라면 가리지 않고 취득하고 전문 강사 교육들을 수료하고 있다.

    남씨는 “장애인들은 시설이나 집 대문만 나서면 모든 게 장애물이다.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의존적이고 억압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학습된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자립을 하기도 쉽지 않은데 세상에 나오기가 더 힘들다. 국민 약 5%인 250만여명이 장애인이고 도내에도 약 18만명의 장애인이 있지만 주변에서 이들을 쉽게 만나기 힘든 이유다”며 “누구나 장애인 권리 보장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정작 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은 미미한 게 현실이다. 이것이 세상에 나와 몸소 부당함을 호소하는 이유이다”고 말했다.

    글= 김재경 기자 jkkim@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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