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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번 설날엔 고향 어른을 찾아뵙자- 윤한신(전 마창진 합천향우회장)

  • 기사입력 : 2018-02-0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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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날은 민족 최대 명절이다.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 사상에 기반을 두고 돌아가신 조상님과 자손이 함께하는 뜻 있는 시간이다.

    설날은 묵은해에서 새해로 가는 경로로 새해에 융합되지 않았기에 언행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보면 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고자 하면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희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 (238) 정월에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3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시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일치된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오늘날의 설날과 비슷한 풍속이라 할 수 있다.

    신라에서도 제36대(765~780) 오묘(五廟) 태종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에 대해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대보름, 삼짓날, 팔관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필자의 유년 시절 설날이 다가오면 어머님이 설빔으로 옷과 신발, 양말 등을 식구 수대로 사가지고 와서 방에 갖다 놓는다. 그러면 설이 될 때까지 매일 신발도 신어보고 옷도 입었다 벗었다 장롱 안에 넣었다 내었다 했다. 설날이 온다는 기쁨으로 모든 일이 재미가 있고 신이 났다. 또 어른들 말씀이 섣달그믐날 잠을 자면 굼벵이가 된다는 속담이 있어 잠을 설치고 어른들은 밤새도록 화투를 치곤 했다.

    그렇게 기쁘고 기대했던 설날이 되면 한 가지 힘든 일이 생겨난다. 어머님께서 제일 연세 많은 어른들부터 차례로 떡국을 갖다드려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하루 시간이 가버리고 하였다. 어머님 심부름하고 나면 또 한 차례 아버님께서 웃어른들을 한 분도 빠짐없이 세배 드리라고 하여 집집마다 세배인사를 하였고, 하루에 인사를 다 못하면 그 다음날 끝내곤 하였다.

    그러고 나면 청춘 남녀들은 윷놀이, 연날리기, 널뛰기 등을 했다. 그 당시 마을 어른 섬김, 어른 숭배 관계로 제대로 놀지 못하고 짜증스럽게 생각했으나 세월을 지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너무나 큰 인성교육이 되었다. 어른들께 허리 굽혀 공손히 절을 하다 보니 공경심이 몸에 배게 되었다. 요즘 어느 곳에 이런 인성교육이 있을까 싶다.

    설 연휴, 외국 여행도 좋지만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이나 마을 어른들한테 세배도 하고 성묘도 하고 옛날 추억을 되새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윤한신 (전 마창진 합천향우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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