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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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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의미 - 박서영

  • 기사입력 : 2018-02-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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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를 잘 치는 긴 손가락을 갖기 위해/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갈퀴를 찢어버린 사람,/그러고 보면 호미를 쥐는 손은 호미에 맞게/펜을 쥐는 손은 펜에 맞게 점점 변해가는 것 같다/그건 자신의 울음에 알맞은 손을 가지려는 것/자신이 만져야 할 색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음악의 육체에서 고양이가 울고, 음악은 점점 자란다/시간과 공기의 색을 찢으며/사자의 음악과 치타의 음악과 표범의 음악이 흘러나온다/악기들은 때때로/코끼리, 하마, 기린의 울음을 연주하게 될 것이다/아프리카 초원에는 겁에 질린 소녀의 색이 있고/기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주문을 흥얼거린다/기타를 잘 치는 긴 손가락을 갖기 위해/손가락과 손가락 사이 갈퀴를 찢어버린 사람이 있다/그가 오늘은 어린 사자 새끼를 연주하고 있다/울음이 길어지면 손가락도 점점 자랄 것이다

    ☞ 이 시가 너무 좋아 아껴두었다가 이 코너의 맨 마지막 날에 읽어야지 마음먹고 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당신의 부음을 받고 그리운 당신의 이름이라도 한 번 더 불러보는 심정으로 이 시를 읽습니다. 그래요. 당신은 좋은 시를 갖기 위해서는 열 손가락 아니, 열 발가락 갈퀴도 찢어버릴 사람이죠. 며칠 전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 채 우리는 마주보며 점심을 먹고 겨울 한낮 호숫가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잠든 듯 고요한 호수를 바라보았지요.

    내가 불쑥 비타민D를 받자며 두 팔을 뻗어 손을 수직으로 세워 짝 폈을 때 당신이 나를 따라 손을 폈을 때 보았지요. 당신의 손가락엔 이미 갈퀴가 없다는 것을, 당신은 시를 잘 쓰는 손을 갖기 위해 갈퀴를 찢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거죠? 그래서 당신의 시에는 갈퀴를 찢는 울음이 그칠 날이 없었던 거죠? 시 외엔 어느 누구에게도 울음을 보이지 않던 꽉 다문 당신 입술을, 입술의 내면을 존경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자꾸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은, 정말 오랜만에 내게 온 축복 같은 당신이라는 좋은 글 친구를 불시에 잃어버린 나의 박복함이 서럽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념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과 그것을 하나도 손상하지 않으려는 듯 갈퀴 없는 노련한 손놀림으로 그려내는 당신의 시를 이제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애통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친구여! 당신이 떠나간 곳이 어딘지 나는 모릅니다. 꿈에라도 떠날 수 없는 사랑하는 가족과 시를 두고 당신이 이렇게 속절없이 떠나가야만 한다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손쓸 수 없는 지독한 슬픔의 이치를 뼈아프게 짐작할 뿐입니다. 부디 당신이 간 그곳에는 갈퀴를 찢는 울음 같은 것은 없기를 굳게굳게 믿으며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잘 가요 친구여!

    조은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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