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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우리나라 여행] 전주 패러글라이딩

겨울바람 따라 새처럼 날다

  • 기사입력 : 2018-02-07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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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침에 쏟아 내린 눈은 지나갈 불행을 다시 불러 세운다.

    2015년 겨울, 친구와 함께 전주를 다녀왔다. 여행일정을 정하기 전 서로 휴가 날짜를 조절하느라 많이 다투며 무산되기도 했다.

    그러다 낯선 곳에 대한 기대 하나로 겨우 전주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한옥마을을 1박2일로 다녀오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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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을 향해 달음박질치자 내 몸은 어느 순간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출발하는 아침 남쪽지방에 큰 폭설이 내렸다. 터미널에 갇혀 친구와 날짜 운을 탓하며 눈이 그치길 기다렸고, 겨우 전주에 도착했다. 곧바로 예약해놓은 패러글라이딩 장비들을 트럭에 실었다. 산기슭을 헤쳐 오르는 트럭은 땅의 굴곡을 온몸으로 받으며 뛰었다.

    트럭의 흙길 따라 굳어진 바퀴자국은 엉성하게 해놓은 시침질 같다. 활공장에 도착해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륙 준비를 마쳤다. 낙하산과 몸을 이어주는 밧줄이 알전구 속 쇠줄처럼 가늘어 보였다. 전문가는 낭떠러지로 곧장 뛰어야 기류를 타고 날아오를 수 있다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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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공하기 전 내 모습.



    떨리는 마음으로 절벽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그러자 밀담 나누듯 부드럽게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갓 태어난 동물처럼 파르르 긴장해 몸이 굳어지면서 붕붕 날기 시작했다. 환호성을 쓸어 담아 얼굴에 퍼붓는 느낌이었다. 거센 바람소리에 귀가 멍멍했다. 구름뿐인 하늘은 시끄럽게 침묵했다.

    두근두근, 공중에서 내 몸은 심장박동 따라 출렁이며 날아다녔다. 풍등처럼 떠다니며 아래를 볼 때마다 아찔했다. 세상의 모든 높낮이를 내려다보면 무섭고 겁이 나다가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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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내린 한옥마을.



    하늘에서 본 겨울산맥은 섬과 섬들이 너무 추워 하염없이 엉겨 붙은 모습이었다. 날아서 산을 한 바퀴 돌았다. 산골짜기의 계곡물이 흰 뼈의 모습으로 얼어있었다. 감추지 못한 속내처럼 얼음 아래로 물줄기가 졸졸거렸다.

    다시 산을 벗어나 더 높이 올라갔다. 자동차들이 티끌처럼 움직이는 것이 보이고 세상이 마치 사랑이 끝나고 난 다음날 같이, 참 별것 없는 곳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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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길을 제대로 준 적도 없는 현실들 낱낱이 풍경이 되었다. 구름 아래서 겨울바람의 살결 따라 곡예비행을 하며 놀다 넓은 밭에 착지했다. 놀이동산에서 단 하나뿐인 기구를 타고 내린 것 같았다.

    트럭으로 돌아와 한옥마을로 가는 내내 다리 힘이 풀려 휘적휘적거렸다. 좋은 시간을 일일이 기억하고 살 순 없지만 전주, 겨울, 비행 이런 단어들에 기억을 조금씩 떼어내 머리에 넣는다. 그러고 잊고 살다 우연히 단어를 주워들으면 떨리는 기억이 걸어 나와 마음이 풍족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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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동성당 전경.



    하늘을 날아다니는 도중에는 황홀한 광경에 감싸여 정신없었다. 구름 밑바닥을 헤매다 땅에 내려와서야 구름에 대해 늦은 생각을 한다. 손을 뻗어 쥐어 봐도 구름은 감촉을 남기지 않는다.

    형체를 유지할 만큼만의 무게, 가볍게 날아가 버리지는 못할 무게로, 구름은 어디로 떠나갈지 계산 없는 여행을 하고 있다. 찰나의 비행 동안, 나와 놀았던 좋은 구름은 이제 낡고 병들어 그만 여행을 마쳤을 테지.

    구름은 수명을 다해 흩날리면서 다른 구름들에게 조각을 보태 배불려주고 소멸한다. 좋은 구름은 지나가고 이제 빈자리가 되었을 하늘에 또 다른 좋은 구름이 드리우겠지.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하늘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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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동성당 내부 모습.



    전주 한옥마을은 다양한 주전부리들로 유명하다. 이틀 동안 먹은 한옥마을의 음식들은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맛이 좋았다. 정성스러운 음식을 만드는 노력은, 만드는 사람과 더불어 먹는 사람에게도 있다.

    도처에 널린 유명한 음식들 중 고심 끝에 전주까지 음식을 맛보러 온 발품도 맛에 한몫을 차지한다. 우리가 묵은 한옥 게스트하우스에는 창원 일행인 우리와 순천, 서울 세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여독을 풀고 나서, 밤이 되자 순천사람들이 넉살좋게 세 일행을 모아 마루에서 밤새 술판을 벌였다. 오늘 처음 본 사람들은 술에 취해, 정이 쌓이는 데 필요한 시간을 건너뛰고 빠르게 마음을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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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마을 주전부리.



    술병 위로 어떤 대답이든 상관없다는 너그러운 질문들이 넘어 다녔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각자의 출신지, 이름, 성별밖에 알지 못한다. 오늘 보고 어쩌면 평생까지도 보지 못할 수 있는 사이니까. 더 없이 불안한 개인의 사정을 꺼내 보일 수 있었다.

    우리들은 전주에서 모였고, 내일이면 모두 전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아내는 사람이 된다. 지금 다시 전주를 찾아도 그때 머물렀던 마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우리는 여행의 형식으로 잘 모르는 사람을 오래 기억한다.

    오늘의 여행을 소중하게, 내일 없이 사랑할 이유가 된다. 한밤에 다시 눈이 내렸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고요한 밤, 미동 없이 가라앉는 흰 눈은 사람을 젖게 한다. 서로의 대책 없는 아픔들에 대해 위로를 그만 만들고, 추위 없는 눈발을 담았다. 어두운 하늘 위에서는 좋은 구름이 담담하게 눈을 뿌리며 사라지고 있겠지 생각하며. 그리고 애인의 마음을 생각하는 새벽처럼 맑은 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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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옥마을 콩나물국밥.



    전주 한옥마을의 한편에는 동학혁명기념관이 자리해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는 혁명과 운동이 참 많았다. 서로의 의견이 달라서, 각자의 신념을 관철하려는 상황에서 인간은 이기는 쪽과 지는 쪽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싸움에서 지고 돌아왔다고 슬프거나 비극인 것만은 아니다. 다시 싸우면 그만이다. 슬픈 일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싸움이 지워지는 것이다. 싸워온 세월의 흔적이 사라지는 것이 정말 비극이다. 외국인들도 많이 찾게 된 한옥문화의 중심 전주 한옥마을에 동학혁명기념관이 있다는 건 바른 일이다.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될 일과 다시 또 일으켜 내야 하는 일, 슬픈 일과 기쁜 일은 흔적이 되어야 비극으로 남지 않는다. 전주 역사박물관을 끝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전주를 하루 더 보고 돌아갈걸 그랬나. 전주가 아닌 다른 곳을 갔으면 어땠을까. 어제 그 비밀은 말하지 말걸 그랬나. 그때 그랬다면 지금 좀 달랐을까. 만약을 읊다 보니 그해 겨울 전주로 떠난 것은 잘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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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백
    △ 마산 출생·경남대 재학
    △ 2015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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