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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마상(騎馬像)의 불문율- 조광일(전 마산합포구청장)

  • 기사입력 : 2018-02-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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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유적지나 주요 도심을 가다 보면 역사 인물의 동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창원광장 중앙로 입구에도 ‘정렬공 최윤덕 장상’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기마상(騎馬像) 형태로는 국내 최대인 길이 7.8m, 높이 6.5m 규모이다. 달리는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늠름한 모습에서 장군의 위상과 용맹스러운 자태가 느껴진다.

    이 동상은 지난 2010년 11월 창원시가 건립했다. 600년 창원 역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창원이 낳은 위대한 인물을 재조명함으로써 통합 창원시의 역사 발전에 새로운 시금석으로 삼는다는 목적에서였다.

    모든 예술 작품엔 작가의 ‘의도’라는 게 있듯 기마상 제작에도 어떤 형식이나 법칙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기마상의 주인공이 전사를 했을 경우에는 말의 앞 두 다리를 번쩍 들게 하여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하고,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이나 후유증으로 사망하면 한쪽 다리를 든 모습으로 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지병이나 노환으로 사망했을 때는 네 발을 모두 지면에 붙이게 디자인한단다. 과문(寡聞)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것이 예술계의 불문율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경북 상주를 중심으로 왜구들과 60번을 싸워 모두 승리를 거둔 후 통영의 진중에서 사망한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정기룡 장군의 기마상은 말이 두 발을 높이 쳐들고 있다. 마치 허공을 박차고 오를 듯한 모습으로 당당한 위풍과 힘찬 기백을 뿜어내고 있다.

    알렉산더도 객지에서 사망했으니 전사로 보고 상체를 꼿꼿하게 세운 말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앙리 4세’의 기마상은 말이 한쪽 발만 들고 있다. 이 같은 기마상은 어렵잖게 볼 수 있는데 그의 동상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프랑스 왕국을 통일하고 국내외의 평화를 이룩했으나 괴한의 습격을 받아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전쟁터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라 파리 시가지에서 광신적인 가톨릭교도 프랑수아 라바이약에게 칼로 암살당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웰링턴 장군과 칭기즈칸의 기마상은 모두 말이 네 발을 땅을 짚고 서 있다.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무찔러 세계의 정복자를 정복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웰링턴 장군은 83세 되던 해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한 칭기즈칸은 61세의 나이로 병사 (病死)했기 때문이다.

    최 장상의 기마상을 다시금 살펴보자니 생각이 깊어진다. 그는 조선 최고의 무장으로 여진과 왜구를 물리친 영웅이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전사했다거나 전투 중에 입은 부상으로 생을 달리했다는 기록이 없다. 관직을 맡아서는 청렴결백하여 청백리로서 이름이 남았고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최 장상의 기마상은 왜 말이 한쪽 발을 들고 달려가는 모습으로 제작했을까? 예술적 가치에만 중점을 둔 작품이라면 작가의 상상력을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나, 그것이 아니라면 불문율을 어긴 게 된다.

    생각컨대, 조형미를 살려 지역의 문화 역사적 정체성을 반영하고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하고자 했던 의도가 통 없지는 않았을 것이리라. 동상을 세우는 목적은 예술의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역사 인물의 동상은 그 자체가 곧 살아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조광일 (전 마산합포구청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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