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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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시어’ 고집한 박서영 시인 타계

5일 발인… 시집 출간 계획에 안타까움
본지 ‘시가 있는 간이역’ 역장·신춘문예 심사

  • 기사입력 : 2018-02-04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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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과 언어 감각의 절정에 있는 시로 한국 문단의 주목을 받아온 박서영(사진) 시인이 지난 3일 오후 4시 오랜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50세.

    고인의 휴대전화엔 메모가 가득했다. 순간순간 떠오르는 사유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고인은 주변 문인들에게조차 투병생활을 숨긴 채 그렇게 모은 ‘뼈의 문장’들을 매달 문예지에 게재하며 작품에 대한 열정을 내보였다. 특히 그는 올해 새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창작기금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져 주변의 안타까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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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가 공기를 껴안는다/어떤 이가 시간을 껴안는다/어떤 이가 적막을 껴안는다/어떤 이가 우레를 껴안는다//목련이 피는데, 개나리가 피는데, 진달래가 피는데, 꽃샘추위가 오는데, 황사가 밀려오는데//흙으로 빚어진 어떤 이가/똥 누는 자세로 아직도 참선 중이시다/매우 고요한 골방/해마다 꽃들이 그의 방문 앞을 지나간다/제비꽃이 피는데, 패랭이가 피는데, 할미꽃이 피는데/낮은 데로 임하여 핀 꽃들 사이에 앉아/흙으로 빚어진 어떤 이가 - 박서영 시인 ‘토우-무덤 박물관에서’ 전문-

    이성적 이미지에 심미적 사유를 견지해 세련된 시를 쓴 시인은 생전에 좋은 시의 잣대는 색다름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의 어떤 시는 좋은데 어떤 시는 아니라는 말은 오류다. 누구도 100% 다 잘 쓸 수 없다. 좋은 시는 남과 다른 시다. 차별화가 어려워서다.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형상화하는 게 어렵다. 남들과 다르게 시를 써야 한다”고 말하며 새로움을 추구해 왔다.

    박 시인은 본지와 인연이 깊다. ‘시가 있는 간이역’ 역장을 맡아 좋은 시를 소개하고, ‘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기획을 통해 도내 곳곳의 아름다움을 글로 전달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문단 신인을 발굴하는 한편 도민에게 전달하는 축시, 추모시 등을 게재하기도 했다.

    성선경 시인은 고인에 대해 “시나 삶에 있어 염결성이 뛰어난 시인이었다. 시를 발표하거나 시집을 묶는 일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엄격했던 사람이다”며 “후배시인이지만 본받을 점이 많았던 시인이었다”고 추모했다.

    박 시인은 1968년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과 요산기금,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금, 행주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는 ‘붉은 태양이 거미를 문다’와 ‘좋은 구름’이 있는데, ‘좋은 구름’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세종에 뽑히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남편과 딸이 있고, 빈소는 창원시립상복공원 장례식장 4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5일 오전 9시다.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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