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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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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홀몸 어르신들의 천사 박희선 마산 고향죽 대표

뜨끈하고 든든한 ‘이웃 사랑’을 전합니다
14년 전 죽 장사 시작하며
죽이 맛있을까 하고

  • 기사입력 : 2018-02-0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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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 창원 마산합포구 월영동 박희선(63·여)씨의 가게에 불이 켜진다. 일찍부터 준비하는 건 다름 아닌 뜨끈한 별미, 바로 죽이다. 아직 문을 열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일찍부터 서두르는 건 지역에 계신 홀몸 어르신들에게 죽을 드리기 위해서다. 힘들 법도 하지만 맛있는 죽을 기다릴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박씨의 표정에는 활력이 넘친다.

    “보통 새벽 3시에는 문을 안 여는데, 할머니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서로 돕고 살아야 하니까.”

    ‘고향죽’이란 간판으로 죽 장사를 하는 그가 하루에 만드는 죽은 120인분. 팔기 위한 100인분에, 20인분은 어르신들을 위한 죽이다. 마산합포구 지역에 있는 7개 동(월영동과 문화동, 성호동, 합포동, 현동, 교방동, 오동동) 어르신들에게 요일별로 20인분을 전달한다.

    올해부터는 힘에 부쳐 격주로 바꿨지만 더 달라고 하거나 아프신 분들에게는 매일 죽을 갖다 드린다.

    이렇게 어르신들에게 죽을 봉사한 세월이 14년이다. 2004년 월영동 롯데마트 앞 번개시장에서 죽 가게를 열면서 봉사를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죽을 나눠 온 박씨는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떠올리며 골목골목을 다녔다.

    “처음 장사를 시작하자 죽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몰랐어요. 할머니들은 옛날 분이라서 죽 맛을 잘 아니까 그래서 할머니들께 드렸는데, 할머니가 맛있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서 다음에 갖다 주고 또 갖다 주고 하다 보니 이렇게 늘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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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선씨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신의 가게에서 홀몸 어르신들에게 배달할 죽을 담고 있다./성승건 기자/



    지역에 계시는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기에는 치아가 부실하고, 소화기능도 떨어지는 것도 ‘죽’을 드려야 하겠다는 결심을 키웠다. 특히 아침을 거르거나 식사를 부실하게 하는 경우도 많아 직접 돕게 됐다.

    “할머니들이 혼자서 밥을 못 해먹는 분들이 많았어요. 죽을 사먹고 싶어도 돈이 아까워서 못 사먹는 분들이 많았고, 거동이 불편해서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죠. 흰밥을 쑤어서 죽으로 해 먹는 분들도 있었어요.”

    혼자서 죽을 만들고, 전달하기에는 힘이 들다 보니 돕는 사람도 생겼다. 남동생(60)이 새벽에 나와서 죽을 만드는 데 도와주고, 친구들도 이른 시간에 나와 소매를 걷어붙이고 봉사에 동참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이 죽을 만들어 어려운 어르신을 돕는 친구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봉사에 발을 들이게 된 셈이다. 윤정숙(62)씨는 “친구가 봉사하고 있는데, 혼자하려면 힘들다. 저도 같이 봉사하고 싶어서 도와주러 온다”고 전했다.

    여기에 ‘사랑실은 교통봉사대’에 가입한 택시기사 6명이 죽이 식지 않게 어르신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죽 나눔을 위해 찾아온 자원봉사자들이다.

    사랑실은 교통봉사대는 택시기사들이 어려운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 지난 1986년 설립한 비영리 민간단체. 박씨를 돕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인 김수철(59)씨는 “혼자 봉사하니까, 바쁠 때 시간을 내서 도와주면 기분이 좋고 마음이 뿌듯하다”며 “돈은 적게 벌지 몰라도 보람 있다”고 미소 지었다.

    작은 가게에서 시작한 나눔이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씨는 먹기 편하게 적당한 크기의 죽 그릇을 2개로 나누고, 아침식사 시간에 맞추면서 죽이 식지 않게 오전 9시에 배달한다. 어르신을 생각한 배려다.

    맛있는 죽을 만들기 위해 북마산 도매 곡류시장에서 쌀과 녹두, 팥 등을 직접 고른다.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제일 좋은 품질을 고집하고 있다. 그가 만드는 야채죽과 녹두죽, 팥죽, 호박죽, 쇠고기죽, 전복죽, 콩죽(영양죽)은 이런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맛이 일품이다. 이 때문에 번개시장에서 인근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여전히 70~80%가 단골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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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먹기엔 죽이 좋아요. 부담스럽지 않아서. 봉사를 하면 힘이 나요. 부자보다 더 힘이 나요. 여기에 할머니들이 ‘니 죽이 최고다, 맛있다’고 하면 너무 뿌듯해요.” 다만 십수 년째 죽 봉사를 하다 보니 어르신들도 바뀐다. 안타까운 것은 사망 소식. 박씨는 “이 일을 하다 보니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도 하는데, 어쩌다 ‘고맙다. 니 죽이 최고다’라고 하신 할머니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박씨는 어릴 때부터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봉사를 좋아했어요. 갖다 주는 건 선수였어요.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도와줬어요. 교방동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계속 살았는데, 육교 위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돈을 주고, 옷도 벗어줬어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혼이 많이 났죠.”

    그의 봉사는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갈 뿐이었다. 이러던 그가 식당 일을 시작한 건 결혼 이후 남편의 몸이 아프면서부터. 21살에 결혼해 아들딸 낳고 키우다 28살이 된 무렵, 8살 많은 남편이 몸져누워 집안의 가장이 돼야 했다. 그때 시작한 일이 떡볶이 분식집이다. 2년 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매를 키우면서 분식집에서 식당, 그리고 죽집으로, 장사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때는 무척 힘들었어요. 몸이 많이 말랐죠. 남편 병간호하면서 장사를 해야 했기에 많이 힘들었어요. 다행히 애들이 고맙게도 잘 컸어요.”

    어렵고 힘든 시기였지만 박씨는 분식집과 식당에서 일할 때도 어려운 어르신에게 반찬을 나눠주며 살뜰히 챙겼다. 그렇게 매일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묻거나 몸이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피며 지내왔다. 항상 환한 미소를 짓는 그의 꿈은 소박하다. 지금껏 그래왔듯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죽’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앞으로 할머니들께 죽 드리는 거 꾸준히 하고, 내가 돈 더 많이 벌면 더 봉사를 하고 싶은 게 꿈입니다. 몸을 건강하게 해서 남을 도와주고, 그리고 같이 봉사하는 사람이 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바람은 없어요.”

    김정민 기자 jm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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