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눈이 쌓여있다는 것
지금 바라보는 먼 산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끝내 못 가리라는 것
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은 오리라는 것
슬퍼할 수 없는 것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
☞ 눈앞에 뻔히 보면서도 수없이 스치고 수없이 만나면서도 끝내 닿지 못하는 먼 산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성적이나 외모나 직업이나 가정환경에 따라 인간의 값을 줄 세우는 편견의 벽이 치워지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너는 나의 먼 산이고 나는 너의 먼 산이 될 수밖에 없다. 이 가없는 먼 산을 두고 시인은 ‘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은 오리라는 것/슬퍼할 수 없는 것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이라고 절망한다. ‘슬퍼할 수조차 없는’ 슬픔, 이 짧은 한마디 속에 이 세상을 직조하는 슬픔의 블랙박스가 들어 있다.
2018년 새해에는 서로서로 조금씩 다가가서 먼 산은 있어도 ‘끝내 못 가’는 산은 없는 성취의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조은길 시인
★ 이번 주부터는 199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한 조은길 시인이 ‘시가 있는 간이역’ 역장을 맡습니다. 조 시인은 일반독자와 시인이 다 같이 소통할 수 있는 시라면 지역 구분 없이 소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