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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한국식 영어교육 유감- 양영석(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7-12-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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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인들이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문제를 푸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대학교육을 받은 엘리트들이었는데 제대로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 이들은 문제의 높은 난도에 혀를 내두르며 ‘난 방송작가인데 정답이 부당하다고 생각해’, ‘여태까지 누구와도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 ‘이거 맞히는 사람도 있어?’, ‘정답을 몰라서 창피해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끔찍해 어떻게 다들 괜찮아. 누가 한국 사람들에게 맛있는 차 한잔씩 대접해야 할 것 같아.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문제 출제자들의 지혜에 맡기겠지만 이게 어떻게 영어를 배우기에 실용적인 방법인 줄 도저히 모르겠어’라며 수험생들을 위로하거나 한국의 영어교육 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수능은 대학에서 공부할 능력, 즉 수학능력을 갖췄는지를 평가하는 취지의 적성고사지만 현재는 전국 단위 서열화에 쓰여지고 있다. 대학에서 교육받을 자격이 있는지 평가하는 시험인데 학생들을 서열화해 선발하는 시험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런데도 수능시험이 쉽게 출제되면 언론이나 입시 관계자들은 ‘물수능’이니, ‘변별력을 잃어 상위권 학생들이 불리하게 됐고 진학지도에 혼선을 빚게 됐다’며 딴지를 건다. 올해 처음 영어영역에 절대평가가 도입됐는데도 변별력 약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영국인(미국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들이 쩔쩔 맬 정도로 수능 영어시험을 어렵게 출제할 필요가 있을까. 어렵고 격조 있는 단어와 어휘를 쓰지 않더라도 대화하는 데는 하등 지장이 없다. NBC ‘엘렌 드제너러스 쇼’ 등 미국의 인기 있는 토크쇼에서도 고차원의 단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수능 영어시험이 학생들이 아닌 대학교수, 교사, 영어학원을 위한 시험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초등학교 3년(4~6학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등 9년 동안 영어공부를 해도 회화수준은 비영어권의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서열화를 위한 필기시험에서는 다른 나라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정작 외국인을 만나면 말 한마디 못하고 피하기 급급하다.

    반면 비영어권이지만 영어회화능력이 뛰어난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시험에 필수 영역인 문법과 독해 대신에 팝송 노래, 게임, 발표, 그룹 과제 등 영어와 친해지고 생활화하는 데 영어수업의 중점을 둔다.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만 수업을 진행하고 자국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TV에서는 자막이나 더빙 없이 영어권 방송프로그램을 방영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고 익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니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영어로 대화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문법이나 어휘보다 회화 위주로 영어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은 새삼스럽지 않고 대부분의 교육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바지만 어찌된 일인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만국공통어인 영어로 대화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게 되는 글로벌 시대다. 북유럽 국가들의 영어교육 방식이 옳다는 것이 증명됐으니 타산지석으로 삼고 따라가야 한다.

    교육당국이 수능 영어영역에서 독해·문법 등 필기시험은 없애고 듣기, 말하기로만 평가하길 촉구한다.

    양영석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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