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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19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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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영국 윈체스터

소박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 마을’

  • 기사입력 : 2017-12-13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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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월이다. 오늘 글을 쓰는 한 장면도 12월, 그리고 런던에서의 일이다.

    런던의 겨울은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춥지가 않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런던에서만큼은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브랜드의 두껍고 비싼 패딩을 부러워한다거나 그것을 사지 못한다고 해서 박탈감 같은 것은 느낄 필요가 없었다. 내겐 그런 런던의 날씨가 지금도 그립다.

    그런데 그날은 유독 추운 날이었다. 당시 런던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요즘 런던 날씨가 한국의 겨울 같다며 불평을 하던 날이었다. 뉴스에서는 런던에 찾아온 한파에 대해 연일 떠들어대던 때, 뉴스보다 더 시끌벅적한 런던 언더그라운드(지하철) 사람들 사이에 유독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다.

    ‘런던 근교, 윈체스터 크리스마스 타운으로 오세요’라는 둥의 단순한 문구와 ‘안녕, 내 이름이 바로 크리스마스야’라고 말하는 듯하게 크리스마시(Christmasy :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의)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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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마을의 크리스마스 마켓.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명과 장식품들이 놓여 있다.



    사실 런던에서 연말이 처음이 아니라는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하철 포스터의 ‘크리스마스마을’이라는 타이틀이 근사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0여년 넘은 서포터였던 나로서는 윈체스터라는 이름도 뭔가 마음에 들었다. 결국 어딘가를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도 않았고 언제나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여행은 언제나 그랬던 거 같다)

    윈체스터라는 런던 근교에 가는 과정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당시 프로 런더너(Londoner)였던 나로서는 거기까지 가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지금 다시 그것을 기억하는 건 내가 2012년 런던에서 일상적인 11월 30일 아침에 무엇을 먹었냐는 거를 다시 기억해 내야 하는 거랑 비슷한 일이기 때문이다.

    윈체스터에 도착한 느낌은 여느 런던 근교의 도시처럼 조용하고 한산했다. 그리고 나는 그 느낌을 분명히 좋아했다. 가끔 이렇게 도시의 간판 색들과 시선 끝에는 언제나 벽이 있는 풍경을 떠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런지 런던 근교의 어떤 곳을 가든 별 불만 없이 각 도시만의 매력을 충분히 즐기면서 괜찮은 여행을 했었던 것 같다.

    아직 고드름 같은 조명 속엔 노란색 불들이 켜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11월에 이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해가 지길 여유롭게 기다리며 윈체스터에서 윈체스터 크리스마스 타운까지 천천히 걸었다. 크리스마스, 연말, 새해와 맞닿은 12월, 녹색과 주황색이 반짝거리며 눈처럼 내리는 기분, 차갑게 코끝을 스치는 사탕향기, 눈이 내리지는 않지만 얼음이라도 내리는 것 같은 풍경. 윈체스터 크리스마스 타운의 불빛들이 켜지면서 내가 런던의 지하철 포스터 광고에서 보던 장면들이 허풍 없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런던에 펼쳐지는 윈터 원더랜드라는 크리스마스 기획 마켓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리고 분명히 윈체스터라는 마을이 크리스마스타운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데에는 역사적인 무언가가 있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고, 런던의 매년 기획적으로 뚝딱 생기는 윈터 원더랜드와는 다른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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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서 봐야만 하는 것 같은 시골의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의미가 분명히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차로 돌아가서 런던 시내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스트리트를 즐겨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즐기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녀야 했다.

    이곳에서의 시간을 만끽해야만 했다. 포스터가 자아내는 분위기처럼 이곳에 서서 내가 크리스마스라고 외쳐야만 할 것 같았다. 열심히 사진도 찍고 세상 관심없었던 꽃가게 앞에서 마치 산타 앞에 눈사람처럼 서 있기도 했다.

    온 동네가 크리스마시(Christmasy)한 기분이었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크리스마스가 씌어져 있었다. 나도 그랬다. 많이 걸었는지 다리가 지치는 만큼 껴입은 코트의 단추도 하나씩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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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게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마침 카페와 식당의 중간 정도로 보이는 가게가 보여 손도 녹일 겸 다리도 쉴 겸 들어가 앉은 순간 내 눈 앞의 풍경. 나는 오늘 그 풍경, 그 장면 그리고 순간을 담은 그때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는 중이다.

    특별하다면 특별한 장면, 평범하다면 평범하다 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단 한 번도 이때에 대해 글을 써보려 노력하지 않아서인지 혹은 노력해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어려운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도 나는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굳이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평등’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쉽고 당연한 명제 아래 지금 여기 앉아있는, 그리고 크리스마스 타운에 모인 설레는 얼굴의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대하는 상인들 모두 평등하게 연말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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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하고 한적한 윈체스터 마을.



    12월은 누구에게나 온다. 이곳 가건물로 대충 지어놓은 것 같은 쉼터 안의 사람들 모두의 얼굴과 그 분위기는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였다. 따뜻한 기분 때문인지 공기 때문인지 노란 조명 아래 습기 찬 곳에 따스한 그들은 그 안에 자연스럽게 존재했다. 오가는 사람들 그들의 눈에도 전혀 부자연스러울 것이 없고 억지스러울 것도 없었다. 다들 공평하게 온당하게 누구나 누려야 하는 윈체스터 크리스마스 타운을 누리고 있었다.

    사회복지사인 내게는 그것은 부러운 부분이었고, 같이 있던 한국인들에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과 다른 이질감이었을 것이다. 부러운 이유는 그들의 그 모든 태도가 당장에 의식한 행동이나 억지스럽지 않다는 것이 분명 오랫동안 형성된 문화에 기반한 것임을 나는 런던에 사는 내내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장 사회운동을 해서 ‘장애인에 대한 시선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자’라고 외친다 해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쯤 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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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윈체스터 마을의 크리스마스 마켓.



    거의 모든 여행을 별 깊은 생각 없이 치밀한 계획 없이 떠난다. 크리스마스 기간을 들어 갑자기 찾은 윈체스터 크리스마스 타운도 그랬다.

    그리고 그곳에서 난 크리스마스를 만났다. 이후로 나는 매년 이 기간에 윈체스터, 그 장면을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구별 없이 찾아오게 되는 연말연시, 그 당연한 크리스마스 같은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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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장식의 조명들.



    하얀빛이 눈처럼 내리는 화이트크리스마스, 따뜻한 노란빛, 빨간 소품들이 담요처럼 우리를 덮는 시간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환상적인 시간이 아니라 성냥팔이 소녀의 빨간 망토와 하얀 눈처럼 비극이 돼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매년 그 소외된 사람들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기도한다.

    다들 설명할 필요 없이 설레는 연말이다.

    스산하게 불어오는 바람마저 주황빛같이 따뜻한. 눈 내리지 않지만 하얀 눈이 사방에 내린다. 누구 하나 웃지 않는 사람들이 보일 리 없는 구주 오신 기쁜 날. 꺼져가는 성냥팔이 소녀의 비극 같은 사람들 없이. 여러분 주위의 모두가 행복한 연말연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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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강(리버맨)

    △1983년 마산 출생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졸업

    △창원대 사회복지대학원 재학중

    △카페 '버스텀 이노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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