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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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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송암(三松巖)에서- 도희주(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7-12-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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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전남에서 산세가 거칠다는 영암 월출산을 다녀왔다. 우리나라 최초라는 ‘구름다리’를 지나 ‘천황봉’에서 ‘바람재’를 향해 바위산길을 얼마나 내려갔을까. 등산 지도에 이름도 없는 날카로운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족히 40m 남짓 높이. 가파른 삼각구조. 위험을 느낀 일행들이 급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필자는 등지고 갈 뻔했던 다른 면을 올려다보았다. 자칫 보지 못했을 진기한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그 모습을 얼른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바위 정점에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와 그 아래 또 한 그루. 주위에 큰 소나무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기이할 정도다. 더 놀라운 것은 바로 그 아래 점처럼 보였던 것이 사진을 확대하자 막 자라기 시작하는 어린 소나무 한 그루 아닌가.


    문득 무명 바위에게 이름을 주고 싶었다. 삼송암이라고. 깎아지른 바위 틈의 척박한 곳에 뿌리내려 제대로 자라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내려다보는 단단한 자세는 세한도와 비교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세도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권력에서 가장 먼 땅 제주도까지 유배를 갔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족조차 만날 수 없는 고립의 나날. 호형호제하던 지인들조차 제 목숨 보존을 위해 외면했다. 그러나 사제 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제자 역관 이상적은 북경에서 서적을 구해 김정희를 두 번이나 찾아갔다. 신의를 잃지 않은 그에게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우리들의 현실에도 그런 모습은 비일비재하다. 정치인이 아니어도 헤게모니에 집착하고 한 줌 권력을 얻자고 이합집산과 감언이설이 난무하는 현실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변방의 작은 단체에서조차 인간관계의 신의는 헌신짝이 된 지 오래다.

    가지가 꺾이고 구부러진 노송 한 그루, 잣나무 세 그루, 누옥 한 채가 세한도의 풍경이다. 마을과 단절된 누옥은 그 자체로 추사의 고독이 절절이 묻어나며, 고사 직전의 노송은 피폐해진 자신의 현재 처해진 처량한 신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는 거기서 글 쓰고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주부이자 생활인이며 동화를 쓰는 작가다. 셋 다 내겐 소중하지만 가끔 그런 자세가 작가로서 치열한 태도인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위리안치 형으로 대문 밖 출입마저 봉쇄된 누옥에 독거하면서도 글쓰기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추사. 그는 그날 월출산 산행에서 내가 보았던 ‘삼송암’ 바위에 뿌리 내린 꼿꼿한 소나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작가로서 과연 그 발치에 가 닿을 만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을까 자문해본다. 하지만 턱도 없는 얘기 같다. 굳이 비교하자면 너무 작고 약해 존재조차 모를 뻔했던 ‘삼송암’ 어린 소나무의 위태한 모습이 어쩌면 지금의 나와 닮았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연민이 간다. 그 자리에서 바위를 뚫고 뿌리를 내릴 수 있을지, 얼마 못 가 도태되어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운명의 어린 소나무. 허약해서 금방이라도 바람에 뿌리 뽑힐 것 같았던 모습. 그 어린 소나무가 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의지를 가지고 굳건히 뿌리를 내리면 좋겠다. 바위를 뚫고 일어서서 당당하게 바람과 맞서기를 희망한다. 나도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도희주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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