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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남한산성’의 교훈- 조광일(전 마산합포구청장)

  • 기사입력 : 2017-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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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하! 속히 남한산성으로 옥체를 피하소서. 세자 저하를 볼모로 보내지 않으면 화친은 없을 것이라 했사옵니다.”

    “전하! 명길은 지금 세자 저하를 욕보이고 나아가 전하를 능멸하고 있습니다.”

    “전하! 만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마시옵소서. 조선의 백성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명길이 말하는 삶은 곧 죽음이옵니다.”

    “그럼 어쩌란 것이냐.”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 이야기 일부다.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산성 속에서 47일간의 항전은 처참했다. 치욕을 무릅쓰고서라도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과 청에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 그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조’를 그린 이 영화는 무능한 조정과 힘없는 조선의 설움, 치욕, 굴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하에 처해 있음에도 밤낮 그놈의 명분과 실리, 신념과 원칙만 들먹거리며 싸움질하는 모습을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체찰사 김류의 무모한 전술로 병사들이 몰살당하고, 종국에 가서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적인 장면에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생각할수록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이 난리가 있기 불과 40여 년 전에 일어났던, 임진왜란의 역사적 교훈을 망각해서 벌어진 비극이기 때문이다.

    왜군이 침공해오기 전, 일본의 동태를 살펴볼 요량으로 통신사를 보낸다. 서인의 대표 황윤길과 동인의 대표 김성일, 두 사람이었는데 돌아와서는 서로 상반된 보고를 한다. 황윤길은 “곧 침공해올 것 같다”고 했고, 김성일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아니다’는 쪽에 편을 든다. 당시 동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김성일은 동인이었다. 그 결과 조선은 참혹한 전란을 겪었고, 나중에 김성일이 고백을 한다. 황윤길과 똑같이 느꼈지만 황윤길이 가는 길에 내가 동의할 수 없었다고.

    참으로 한심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위정자라는 사람들은 ‘무엇이 백성을 위한 선택인가’에 대한 고민은 않고, ‘우리 편이냐 아니냐’, ‘우리에게 유리하냐 불리하냐’ 이것을 기준으로 정쟁만 일삼기 때문에 애꿎은 국민만 뼈아픈 고초를 겪어 왔던 것이다.

    영화 ‘남한산성’이 주는 교훈은 딱 하나, 사람을 잘 뽑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랏일을 담당하는 자리엔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이 풍부한 자, 그중에서도 백성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분별 있는 사람을 앉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라고 조지 산타야나는 일찍이 경고했다. 우리는 그동안 그의 말을 허투루 듣는 바람에 수많은 외침을 받았고 능멸당했다.

    한반도에 먹구름이 드리워진 지 오래다. 닥쳐서 허둥대면 늦다. 미리 보고 멀리 봐야 한다. 지금 국민은 불안하다.

    조광일 (전 마산합포구청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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