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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노벨 문학상과 우리의 자화상- 이춘우(경상대 불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7-10-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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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은 두 가지 일로 우리로 하여금 언어와 문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첫째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이고, 두 번째는 한글날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매해 10월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데 올해는 5일에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를 수상자로 결정했다. 대표작 ‘남아있는 나날’이 전 세계 20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을 정도로 그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다. 그런데 노벨 문학상 수상자 선정 즈음에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불편한 일이 있다. 바로 시인 고은의 수상을 염원하는 기사다.

    1년 내내 잊혔던 시인은 이 즈음이 되면 언론에 어김없이 불려나와 ‘국민적 열망’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 국민적 열망이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에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이 있다. 과연 우리는 노벨 문학상이라는 수확을 거둘 만큼 많은 문학의 씨앗들을 뿌려왔던가? 우리 문학이 세계적 인정을 받으려면 국내 문학의 토대가 단단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빈곤한 작가군, 갈수록 감소하는 독서 인구, 활력을 잃은 비평계, 미비한 번역 지원, 그 어느 것도 장밋빛 미래와는 거리가 멀다. 노벨 문학상에 목매기 전에 우리의 이러한 초라한 자화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국적을 따져보면 프랑스가 15명으로 가장 많고, 13명을 배출한 미국, 12명을 배출한 영국, 8명을 배출한 독일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프랑스가 가장 많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은 그저 우연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프랑스인들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든든한 문학적 토대와 역량 덕분에 가능했다. 또한 이것은 프랑스인들의 자국어에 대한 애정과 자국어를 가다듬기 위한 작가들과 정치인들의 오랜 기간 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많이 심었기에 많이 거두어 들였을 뿐이다.

    프랑스인들의 씨뿌리기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학문과 예술을 후원해 프랑스 르네상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수아 1세(재위 1515~1547)는 모든 공문서를 프랑스어로 작성하도록 하였으며, 왕립 학사원을 창설해 고대 학문 연구를 장려했다. 비슷한 시기에 칠성파 시인들은 프랑스어가 심오한 시적 감정과 사상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언어임을 선언했다. 루이 13세는 1635년에 프랑스 학술원을 설립해 정서법과 표준어를 제정하는 등 프랑스어를 순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17세기에 라신, 코르네유, 몰리에르에 의해 프랑스 고전 문학의 꽃이 활짝 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어를 보호하고 순화하기 위한 체계적인 노력은 20세기에도 이어졌다.

    프랑스 정부는 1966년에 <프랑스어의 보호와 확산을 위한 위원회>를 설치해 영어 어휘들을 적극적으로 프랑스어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1975년의 ‘바-로리올 법’, 1994년의 ‘투봉 법’은 서비스, 상품, 공문서 등에서 불필요한 영어 사용을 막고 프랑스어를 사용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프랑수아 1세보다 1세기나 먼저 활동했던 세종대왕은 한국어를 정착시킬 수단을 일찍이 마련하였건만, 안타깝게도 이후에 한국어를 가다듬고 발전시킬 노력을 한 통치자는 없었다. 20세기에 들어서야 한국어 문학이 본격적으로 창작되면서 한국어가 정착된다.

    그런데 어렵게 자리를 잡은 한국어를 순화하고 발전시킬 노력을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기나 한가? 언어 생활을 오염시키는 비문과 오문, 과도한 한자와 외래어 사용 등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국어를 순화하려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노력과 한국어로 된 우수한 문학을 생산하려는 노력이 병행될 때 우리의 언어와 문학이 풍성해질 것이다. 세계적인 인정은 그 다음의 일이다.

    이춘우 (경상대 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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