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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아리타의 추억 - 김휘 (창원 모리갤러리 관장)

  • 기사입력 : 2017-10-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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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타(有田)는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도공 이삼평을 도조로 둔 400년 역사의 일본 최대의 도요지다.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이마리, 가라츠 도자마을과도 이웃하여 다양한 볼거리가 많아 매년 5월 축제 때마다 200만여명이 방문하는데 나도 즐겨 찾는 곳이다.

    몇 해 전 유난히 많은 관광객이 몰려온 탓에 우리 일행은 숙소를 정하지 못한 채 아리타를 찾게 되었다. 일행들과 축제 분위기에 휩싸여 이곳저곳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날은 어둑해져 정작 안내소를 찾았을 때, 근처 호텔은 물론 작은 민박까지 만실이었다.

    난감한 상황에서 서로들 멍히 쳐다보다가 노숙을 작정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솔자로서 나는 무엇이든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작가들의 부스를 기웃거리며 지인이나 이웃의 민박을 주선해 주기를 부탁하였지만 다들 “참 곤란하게 되었군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마음에 쏙 끌리는 작품을 만나게 되어 작가와 작품에 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조심스레 사정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작가는 흔쾌히 집 작은 방 한 칸을 일행 네 명에게 내어주겠다고 했다. 단 욕실, 침구, 조식은 없다면서.

    그날 저녁 슈퍼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우리는 작가 명함의 주소지로 향했다. 작가의 집은 정원이 인상적인 일본식 이층집이었다. 일층 거실을 통과해 작은 방에 짐을 푼 우리는 양해를 구하고 집안을 장식한 작품들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이층 전시장과 깨끗하게 정돈된 작업장도 안내받았다. 작가와 얘기하다 보니 마음이 통해 밤늦게까지 담소가 이어졌고 일행 모두 작가의 작품들을 구입하게 되었다. 물론 샤워와 침구가 제공되었고 다음날 간단한 조식도 함께 나누게 되었다.

    이 일은 우리에게 지금도 회자되는 에피소드다. 선뜻 이방인에게 방을 내어주고 비틀스 LP를 올리던 그분의 배려는 작가로서의 인간애와 정체성을 보여준 감동적인 일이었다.

    오늘도 나는 ‘갤러리의 문을 여는 낯선 방문객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는 아트디렉터인가’ 스스로 묻곤 한다.

    김휘 (창원 모리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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