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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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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옻칠회화 김성수 - 도희주 (동화작가)

  • 기사입력 : 2017-10-1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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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통영옻칠미술관에 들어섰을 때의 감흥이 아직도 진한 여운으로 남아있다. 경남메세나지 23호 취재를 위해 김성수 관장의 안내를 받으며 작품을 대하던 그때의 느낌은 한마디로 전율이었다. 집 근처에 도립미술관이 있어 자주 들르는 편이었지만 옻칠 회화는 처음이었다.

    한글문양을 비롯한 전통적 문양의 작품을 지나면서 고아한 아름다움에 매료됐다면, 규칙적이면서도 불규칙한 기하학적 문양을 지나 ‘레볼루션(우주의 섭리)’이라는 작품 앞에 섰을 땐 문자 그대로 ‘혁명’이었다. 과연 옻칠로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 위에 옻칠이 아니었다면 결코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느낌이 겹쳐진다. 우주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듯, 거대한 눈동자가 타오르며 펼치는 신비한 빛의 스펙트럼 앞에서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느끼며 나는 전율하고 있었다.

    통영옻칠미술관 관장인 김성수라는 이름 석 자를 안 건 불과 세 달쯤 전이다. 취재를 위해 정보를 찾으면서 옻칠 회화의 현주소를 어느 정도 파악했다. 한국을 비롯한 일본과 중국 그리고 베트남에서 옻칠이 회화 장르로서 상당히 진화하고 있다는 것, 재료의 특수성 때문에 힘들고 한국에서는 옻칠회화에 대한 시장이 그다지 조성돼 있지 않다는 것 등이다.

    옻칠은 장식성에서 벗어나 회화에서 예술적 장르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옻칠의 미술적 미래가치를 이미 알고 있는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는 관심이 각별하다. 베트남은 미술전문대학에 옻칠공예 연구과정을 두고 있으며 일본은 시장 활성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옻칠의 탁월한 과학성은 4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옻칠 경함이 증명하고, 창원 다호리 고분군 유적에서도 입증됐다. 뿐만 아니라 옻칠은 전자파 흡수, 절연, 원적외선 방사 등의 특성이 있어 미국의 경우 우주선 부식 방지를 위해 옻칠 도막을 입혔다는 보도가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산업용으로 개발해 나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현재 옻칠 생산량은 극히 미미해서 금보다 귀한 옻칠을 산업용으로 개발하기에는 아직까지 시기상조일 것이다.

    회화부문은 끊음질, 줄음질, 타찰(打擦)법, 타발(打拔)법, 할패(割貝)법, 시패(蒔貝)법, 조패(彫貝)법의 전통기법을 이어받은 숙련된 작가들이 창조해 내는 회화의 작품성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이미 알아준다.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김성수 관장은 전통 옻칠의 대가이자 현대 옻칠회화를 창시한 세계적 옻칠 예술가다. 그는 일본은 물론 중국, 독일, 베트남 등을 넘나들며 세계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우리 옻칠회화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고 말한다. 우리로부터 전통옻칠을 가져간 일본이 이 방면에 심혈을 기울이고 베트남의 경우 관·학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작품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영은 예로부터 12공방이 있던 곳이다. 그 하나하나가 우리 전통의 우수한 자원들이다. 민·관·학 세 분야가 보다 구체적인 관심을 가져준다면 모두 세계화할 수 있는 저력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맨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김성수 관장의 옻칠회화를 보면서 바로 여기서 첫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우리말 ‘옻칠(OTTCHIL)’은 잊히고 일본어 우루시(うるし), 베트남어 산마이(SAN MAI), 중국어 大漆만 남게 될 것이다.

    도희주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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