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가고파] 불여묵(不如默) - 이상권 정치부 부장

  • 기사입력 : 2017-10-12 07:00:00
  •   

  • 조선 후기 유학자 미수 허목(1595~1682) 선생은 말(言)의 폐해를 지극히 경계했다. 77세 때 고향 경기도 연천에서 ‘불여묵사(不如默社·침묵하는 것만 같지 않다)’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83언으로 쓴 불여묵사지(不如默社誌)에 ‘말(言)은 따라갈 수 없으니, 네 필의 말(馬)로 달려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입은 욕을 부르며, 욕은 입을 상하게 한다.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화를 부르게 된다’고 했다.

    ▼노인이 조심해야 할 입으로 짓는 허물 16가지(戒口過十六)도 나열했다. 희롱하는 말, 가무·여색에 관한 말, 재물의 이익에 관한 말, 걸핏하면 화를 내는 말, 과격한 말, 아첨하는 말, 구차한 말, 과거를 들먹이며 남을 꺾으려는 말, 시기하는 말, 잘못을 지적하면 못 견뎌서 하는 말, 잘못을 인정치 않고 꾸미는 말, 남을 헐뜯는 말, 혼자 곧은 체하며 남의 허물을 들추는 말, 남의 꼬투리를 잡는 말, 남의 사소한 잘못도 떠벌리는 말, 금기(禁忌)와 시대 변고에 삼가지 못하는 말 등이다.

    ▼나이듦은 육체는 쇠잔하지만 인생의 지혜는 쌓이는 역설이다. 하지만 경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과거에 얽매인 이들이 적잖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레퍼토리는 퇴행이다. 의식은 존재에 종속한다. 고루한 생각은 관계 결여를 수반한다. 홀로 옳다는 아집은 자신을 가두는 함정이다. 말로써 화를 자초하는 격이다. 이는 곧 침묵하는 것만 못하다는 불여묵(不如默)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한다.

    ▼우리나라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통계가 있다. 2025년 65세 이상 노인 인구 1000만명 시대를 전망한다. 누구나 노인이 되는 건 거역할 수 없다. 입단속을 강조한 허목의 경구는 꼭 노인에게 한정할 사안도 아니다. 젊을 때부터 가슴에 새기지 않으면 나이 들어 한순간에 체득하기 어렵다. 입을 지키면 망언(妄言)이 없고, 몸을 지키면 망행(妄行)이 없고, 마음을 지키면 망동(妄動)이 없다고 했다. 이상권 정치부 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상권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