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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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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189) 제21화 금반지 사월의 이야기 ⑤

“어디서 왔어?”

  • 기사입력 : 2017-10-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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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월은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가뭄에 폭염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자촌이라 더욱 더웠다.

    “집 잃어버리면 큰일이니까 밖에 나가지 마라.”

    황민우가 사월에게 단단히 일렀었다. 사월은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목이 말라서 수돗가에 나가 물을 마셨다. 산비탈에 있는 판잣집인데 수돗물이 나오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쪽마루에 걸터앉았다.

    “어디서 왔어?”

    주인집 여자가 본채의 마루에 앉아서 물었다. 본채 마루는 양쪽으로 문이 열려 있어 제법 시원해 보였다.

    “충주에서요. 동생이에요.”

    사월은 수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것 같았어. 학생이야?”

    “네. 여름방학이라 서울 구경하러 왔어요.”

    “그런 것 같았어. 고3이야?”

    여자의 음침한 눈빛이 사월의 가슴에 달라붙었다. 그런 것 같았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상한 여자였다.

    “네.”

    “그런 것 같았어. 가슴이 크구나. 학생 주제에.”

    여자가 사월의 가슴을 힐끗 쏘아본 뒤에 참외를 깎아서 혼자 먹었다. 여자는 40대 후반으로 보였고 흑백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이 나오네요.”

    “토요일이라 나오는 거야. 시골에는 안 나오니?”

    여자가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네.”

    사월은 할 일이 없었다. 여자를 상대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방에 널린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다.

    그래도 해가 기울지 않고 황민우가 돌아오지도 않았다. 여름이라 해가 길었다.

    어느 집 라디오에선가 가수 남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해 저무는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사월은 속으로 가만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황민우의 방에는 작은 부엌이 하나 딸려 있었다. 사월은 부엌을 살펴보았다. 연탄아궁이와 석유풍로, 그리고 그릇 몇 가지가 있었다. 밥은 거의 해먹지 않은 것 같았다.

    저녁이 되자 밥을 해놓고 황민우가 돌아올 때를 기다렸다. 황민우는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사월은 황민우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었다.

    ‘오빠는 왜 돌아오지 않는 거지?’

    황민우는 이틀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황민우는 사월을 데리고 다니면서 서울 구경을 시켜주었다.

    동대문시장도 데리고 가고 창경원에도 데리고 갔다. 어떨 때는 두 편을 동시 상영하는 영화관에도 데리고 갔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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