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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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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시골 면장- 이강섭(함안예총 회장)

  • 기사입력 : 2017-09-2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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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직 40년을 마무리하면서 부모님 산소를 찾아보았다. 집안에 좋은 일이 있거나 혹은 마음이 시끄러울 때 가끔 찾는 곳이지만 그날따라 감회가 남달랐다.

    나에게 아버지는 일반적인 아버지가 아니셨다. 여느 아버지와는 다른 내 가슴속의 영원한 멍울인 동시에 인생의 좌표이셨기 때문이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면서 오랜 방황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드렸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막내의 일탈은 아버지 가슴에 대못을 박았을 것이다.

    지방 소도시에서 선비로, 지역의 어른으로 존경을 받으시며 민선 면장을 끝으로 은퇴하신 아버지가 받았을 자존감의 상실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속죄의 술잔을 드리면서 혼자말로 보고를 드렸다.

    “아버지, 쉰둥이 막내가 왔습니다. 언제부턴가 눈이 침침해지고 이마엔 주름이 하나둘 생기더니 어느새 퇴임을 앞두고 인사를 왔습니다. 아버지 그늘을 씌워가며 얼음장 위를 걷듯이 아슬아슬 건너온 인고의 길을 이제 마무리하는가 봅니다.”

    윗사람 눈치 보지 말고 면민들 눈치 살펴가며 면서기 하라시던 아버지 가르침 흘려듣고, 불쌍한 사람 손으로 어루만지지 말고 가슴으로 다독이라던 말씀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40년 세월이 흘러버렸다.

    “아버지 산소 곁에 솔 향이 진하게 흐르고 있네요. 봄이면 난초 향도 은은히 피어오르겠지요. 내년 봄엔 가을국화 몇 포기 심어드릴게요 아버지!”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할 규범으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꼽는 데 주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직 40년을 마무리하고 야인이 되어 유유자적하는 지금까지 목민심서는 고사하고 내 아버지의 두 가지 가르침조차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가르침이 늘 가슴 한구석에 녹아 있지 않았나 싶다. 나도 모르게 흉내라도 따라 내었기에 2대 면장의 꿈을 이루지 않았을까?

    후배 공직자님들이여! 너무 멀리 그리고 높이 쳐다보지 말고 주변을 두루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었습니다.

    이강섭 (함안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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