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4월 27일 (금)
전체메뉴

[살롱] 셋의 불안불안한 사랑 이야기

책 읽어주는 홍아 (5) 반짝반짝 빛나는(에쿠니 가오리)

  • 기사입력 : 2017-09-26 16:27:06
  •   

  • "넌 원래 로맨스를 잘 알던 애였는데 요즘엔 현실쪽으로 성큼 가버린 것 같아." 최근 지인과의 통화에서 들은 말이다. 나도 모르게 예전의 내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나보다. 전화를 끊고는 다시 돌아가보고 싶었다. 로맨스의 계절 가을도 왔기에 수년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일본 소설로 손이 갔다.

    선택한 책은 그 유명한 에쿠니 가오리의 책. 얼마나 달콤 쌉싸름할지 기대됐다. 이탈리아 피렌체에 여행온 동양 여성들의 절반 이상이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고 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냉정과 열정사이'는 너무 많이 읽혔을 거라고 근거 없이 혼자 판단내리고 대신에 '반짝반짝 빛나는'을 펼쳤다.

    메인이미지

    이 소설은 흔한 둘의 사랑이야기가 아니었다. 정신불안을 겪고 있는 쇼코는 부모의 요구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는데 상대는 게이인 무츠키였다. 그리고 무츠키의 애인 곤이 있다는 사실도 쇼코는 알고 있었다. 소설은 이런 등장인물 셋의 불안불안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둘의 사랑이 아닌 셋의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 그래서 쇼코의 정신불안은 소설 중반에 이르면서 심해지기도 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남편 무츠키는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항상 다정하게 도닥여준다. 이러한 다정함이 독이 될 때도 있듯 쇼코의 증세는 안정되지 않는다.

    쇼코의 우울증은 극단으로 치닫고 극단은 항상 새로운 국면을 가져오게 한다. 바로 쇼코가 남편의 애인 곤을 돕는 일이다. 곤이 남편과 헤어지지 않을 수 있게 쇼코가 돕고 이 미묘한 셋의 관계는 점점 안정적으로 변한다. 이 관계가 순탄치는 않지만 쇼코는 남편의 애인 곤을 아래층에 살게 함으로써 완전한 안정을 찾은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메인이미지
    '반짝반짝 빛나는'의 첫 장.

    책을 덮으며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냐'다. 난 일상적이면서 감미로운 로맨스 소설을 원했지만 이 소설은 정반대였다. 하지만 뒤통수를 때리는 여운이 있었다. 바로 '셋의 관계'이다.

    대학시절 사르트르를 얄팍하게 읽으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명제는 '둘의 인간 관계는 언제나 실패'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이고 관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랑의 관계에서는 서로의 주체성을 유지하면서 둘이 하나 되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하고 둘 중 하나는 주체성을 잃고 객체화되면서 사랑도 '항상' 실패라는 것이 사르트르의 설명이다. 이렇게 사르트르는 나와 타자와의 모든 관계를 매우 비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메인이미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태극부채. 지역 향교나 서원 입구 문에서도 삼태극 문양을 쉽게 볼 수 있다. /조규홍 기자/

    이런 관점은 '셋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이 소설과 이어져 인간 관계의 새로운 모습을 고민하게 한다. 사르트르와 달리 우리나라 전통에서는 관계를 설명하는 관점에 3이 더 많이 쓰인다. 그 일례가 '삼태극(三太極)'이다. 보통 삼태극은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로 만물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특히 삼태극 사상에서는 둘의 불안 보다는 셋의 조화를 통해 완전한 안정이 이뤄진다고 설명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현실로 돌아오면 둘의 관계에서 하나를 더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소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 남편의 애인이 아니라도 된다. 둘의 관계에서 똑같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 무엇이면 둘의 관계는 불안을 통한 안정을 이룰 수 있다. 쉬운 예가 부부와 자식이다. 부부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자식이 없다면 반려동물이나 그 둘이 좋아하고 집중 할 수 있는 취미라도 제3의 것으로 하기에 문제없다. 반면 황혼이혼은 둘의 관계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하나의 방증이 된다. 자식의 존재로 인해 유지되었던 부부관계는 자식의 독립을 계기로 급속하게 깨지는 것이다.

    메인이미지
    옮긴이도 가을에는 로맨스가 어울린다고 동의하고 있다.

    사랑이 깊어지면 둘이 하나가 되면서 그 둘의 세계를 창조한다. 이 순간은 사르트르가 말하는 진리의 단계(서로의 주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융합됨)이다. 하지만 그 관계는 매우 불안정해 요동치다가 분해되기 쉽다. 그래서 둘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제3을 만들어야한다. 이 소설의 결론은 우리 관계에서 쇼코와 무츠키 부부 사이의 '곤'은 어떤 것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마무리 된다. 조규홍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조규홍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