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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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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중앙분리대 - 김용권 (시인)

  • 기사입력 : 2017-09-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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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란 사람과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을 말한다.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일환으로 경제발전을 계획하고 실행할 때 도로를 먼저 건설한다. 교통망을 잘못 관리하면 엄청난 사회적 손실을 가져오게 된다. 즉, 도로는 도시의 혈관인 셈이다. 고대 로마제국은 길을 만드는 데 적극적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부터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국가의 성장에 도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도로 대부분에 중앙분리대가 설치돼 있다. 도로 교통법상에는 차도를 왕복 방향으로 분리하면서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하는 것이라 했다. 이에 연석이나 그와 유사한 구조물로 도로의 다른 부분과 구분되도록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중앙분리대는 차는 물론, 운전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기에 도로에 있어서 중요한 설치물이다.

    차량이 많아지고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동안 도로에는 많은 대책이 세워졌다. 그 하나가 중앙분리대의 견고한 역할이다. 그러나 견고한 것만 생각하다 보니 미적인 아름다움은 잃었다. 중앙선에 콘크리트나 철 구조물을 세워 양쪽으로 갈라놓은 것을 보면, 꼭 나라가 양분된 철책 같은 생각이 든다. 민족분단의 상징인 철책처럼 견고하고 견고하다. 전역에 만들어진 중앙분리대는 동네와 동네를 나누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나누고 있다.

    사람의 길에 차가 다니면서 경계를 두르기 시작했다. 이는 사람의 안전을 우선시 하는 도로교통법상의 문제이기는 하나, 이 경계로 인해 도로는 물론 사람의 경계도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너와 나를 분리하는 무언의 요소가 되고 있다. 또한, 도로를 지나는 많은 동물도 죽임을 당하고 있다. 길을 따라 내려 왔다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는 머리를 들이받을 수밖에 없다. 넘어야 하는 곳에서 넘지 못하면 차도에서는 들이받아야 하는 죽음뿐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뼈아프게 박힌 쇠말뚝 제거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민족정기를 끊고자 박은 쇠말뚝은 생각만 해도 끔찍스러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제거하기 위해 지금도 전국 명산이나 목 좋은 곳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전국 산하에 박힌 쇠말뚝은 맥이 흐르는 내 정수리에 박혀 있는 것 같아서 뽑아내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는 민족정기를 회복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상징적이기는 하나 맥이 흐르는 곳에 박은 일본인의 행위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제 강점기에 박힌 쇠말뚝보다 더한 철 구조물을 전역에다 박고 있다. 도로가 뱀의 입속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물류가 흐르고, 사회 원동력이 움직이는 것이 사람의 몸과 같아서, 따뜻한 혈류가 흘러야 하는 이곳에 철 구조물을 막아 세우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교통행정의 하나이다. 혹자는 교통사고 예방 차원에서 더 강건한 것을 원할 수도 있으나 이것은 의식의 차이일 뿐이다.

    시원스럽게 도시를 가로지른 창원대로 중앙에는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철 구조물로 경계를 만들어 놓았지만 이것을 제거하고 꽃과 나무를 심은 것이다. 공업도시의 위상이 밝아졌다. 왕복차선에는 꽃의 마음, 나무의 푸른 마음으로 차가 달리고 있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아름다운 길, 도시의 정원이 된 것이다. 달리면 눈의 피로도 없어진다. 마음의 안정이 오고 상쾌해지면 교통사고 또한 줄어들게 명백한 사실이다. 금수강산 가는 곳마다 철책이 둘러쳐 있다면 내 마음의 경계는 더욱 강건해질 뿐, 아무도 걷어낼 수 없다.

    김용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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