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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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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사회적 상처가 우리 몸을 아프게 한다
차별 겪고 말하지 못하면 몸은 더 나빠져
사회문제와 건강 관계 분석·해결책 제시

  • 기사입력 : 2017-09-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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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역학자인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차별 경험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야기한다.

    취업 과정에서의 차별을 측정하기 위해 연구의 설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경험할 때 차별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대답은 ‘예, 아니오, 해당사항 없음’ 3개 항목 중 선택이 가능하다. ‘해당사항 없음’은 구직 경험이 없는 응답자를 위해 만들어둔 항목이다. 이미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예’ 혹은 ‘아니요’의 응답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직장인 상당수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응답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김승섭 교수는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다. 그러자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남성의 경우,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차별이 없었다고 응답한 사람들과 건강에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여성들의 경우 달랐다.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여성들의 건강상태는 차별을 받았다고 응답한 사람보다도 더 나쁘게 나타났다.

    비슷한 또 다른 연구에서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상대로 질문했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뒤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응답자 중 김승섭 교수가 주목한 것은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학생들이었다. 이 학생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더니 이번에도 남녀 간에 극명한 차이가 드러났다. 여학생들의 경우, 별다른 차이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남학생들에게서 차이가 나타났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대답한 남학생들의 정신 건강이 가장 나쁜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넘겨버렸던 경험이 실제로는 몸을 아프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차별이나 폭력을 겪고도, 말조차 하지 못할 때, 혹은 애써 괜찮다고 생각할 때 실은 우리 몸이 더 아프다는 것을 이 연구들은 보여준다. 저자 김승섭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고용 불안, 차별 등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지, 사회가 개인의 몸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사회역학의 여러 연구 사례와 함께 이야기한다.

    이 책은 공중보건의사 시절부터 김승섭 교수가 걸어온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과 연구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천안 소년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만나면서 했던 고민들은 이후에 인권위원회의 ‘재소자 건강 연구’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에는 세월호 참사의 단원고 생존학생들과 가족들의 건강 연구를 하면서 안산에 상주했고,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올해 동성애자 군인이 ‘군형법’ 제92조의 6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던 날에는 집회 현장에 서기도 했다.

    우리 사회 주요한 문제들을 합리적 근거와 함께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질문도 던진다. 서로 돕는 공동체 문화가 심장병 사망률을 낮췄던 로세토 마을의 사례, 사회적 연결망이 기대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사회역학의 연구 사례 등을 소개하며, 함께 건강하기 위해 공동체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김승섭 교수의 치열한 고민과 사유가 잘 묻어난 몇몇 문장들은 의미 있는 보도사진이나 한국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배치돼 있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펴냄, 1만8000원

    양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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