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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문화기획] 재생건축 - 옛 공간, 새롭게 태어나다

  • 기사입력 : 2017-09-0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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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낡은 것은 버려야 할 것으로 치부됐다.

    산업화를 거치며 수많은 낡은 것들이 헐려나갔다. 그 자리에는 콘크리트로 지어진 반듯하고 규격화된 새 건물들이 차곡차곡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시 낡은 것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규격화된 콘크리트 건물이 일상적 풍경이 된 지금,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이라는 공식은 균열이 생겼다.

    오래된 공장이나 창고, 주택을 개조한 공간이 SNS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트렌드가 된 새로운 낡음, 재생건축에 대해 알아본다.


    ◆콘크리트에 대한 반성= 재생건축은 쓰임을 잃은 과거 건물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용도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낡은 건물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에 축적된 역사, 문화를 복원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재생 건축은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콘크리트, 철, 유리로 상징되는 모더니즘 건축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도시 재건의 목적에 정확히 부합했다. 빨리 지을 수 있었고 경제적이었고 깨끗했다. 효율성과 실용성을 내세운 모더니즘 건축은 곧 세계 건축의 주류로 자리 잡았고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더불어 수많은 대도시에 초고층, 초대형 건물이 들어서면서 절정을 맞았다.

    하지만 상승곡선을 그리던 경제발전이 주춤해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규모 프로젝트형 건축이 설 자리는 점차 줄었고 콘크리트 건축물은 포화상태를 맞은 채 일부는 용도를 잃고 버려지기 시작했다. 무조건적인 속도, 효율 추종에 대한 반성과 함께 방치된 건축물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재생 건축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일찍이 이런 국면을 맞이한 유럽은 1990년대부터 재생건축에 눈을 돌렸다. 화력발전소 건물을 개조해 2000년 개관한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미술관은 재생 건축의 가장 대표적이고 성공적인 사례다. 제철공장을 개조해 1997년 개장한 독일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탄광 일대를 박물관, 도서관 등 문화공간으로 바꾼 독일 에센의 졸페라인, 170여년간 중범죄자를 수감하던 감옥을 개조해 2007년 문을 연 핀란드 헬싱키 카타야노카 호텔, 폐선된 고가 철도를 공원으로 만들어 2009년 개장한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파크 등이 재생건축의 롤모델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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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문화공간 ‘루시다’



    ◆도내 곳곳에도 재생건축= 낡은 건물에 새롭게 숨결을 불어넣은 사례는 도내서도 찾을 수 있다. 올해 5월 개관한 진주 망경동의 사진 전문 갤러리 루시다는 목욕탕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1982년 지어진 3층 규모의 건물은 목욕탕 이전에는 여관, 다방 등의 용도로 쓰였다고 한다. 루시다의 이수진 관장은 호탄동에서 운영하던 갤러리 이전을 위해 건물들을 물색하던 중 지금의 건물을 발견했다. 이 관장은 “진주의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아카이브 작업을 하면서 망경동에 관심이 많았다. 고 박생광 화백의 출생지기도 하고 진주의 원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동네”라며 “그간 거쳐간 건물의 역사도 흥미로워 외관을 살려 리모델링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1층은 카페·1전시실·카메라 전시장·사진전문서가로, 2층은 2전시실로 꾸몄다. 3층은 이달 중 게스트하우스 오픈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1층 전시실과 카페 일부 천장은 목욕탕 타일을 그대로 살렸고 외부에 ‘해운탕’이라고 적힌 목욕탕 굴뚝도 철거하지 않고 보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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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시 망경동의 한 목욕탕에서 사진 갤러리와 카페 등을 갖춘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진주문화공간 루시다’. 목욕탕의 낡은 타일이 천장에 그대로 있다./김승권 기자/



    루시다 하미옥 큐레이터는 “동네 주민들이 흥미나 관심을 많이 보인다”며 “목욕탕을 기억하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지나가다 들러서 내가 여기서 때밀고 그랬다며 건물의 예전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마산합포구 중앙동 마산다방은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케이스다. 앞마당이 있고 입구에 복도가 길게 나있는, 해안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의 주택으로 1953년 지어져 축조된 지 60여 년이 넘은 곳이다. 원래 노부부가 살았고 이들이 떠나면서 2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던 곳을 서성훈씨가 자신의 작업실 겸 카페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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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마산다방’. 서성훈 대표가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작업실 겸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마산다방 서성훈 대표는 도시의 옛 모습을 기록하고 싶어서 낡은 주택을 재활용하기로 했다. 그는 “재개발로 모든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시의 모습이 점점 획일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건축학 전공자로서 도시의 원형을 기록하는 작업에 흥미를 느꼈고 마산 출신이라 마산에서 그런 작업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서까래, 용마루 같은 주택의 뼈대는 그대로 남겨두고 2개로 나눠진 방을 허물어 카페 공간을 만들었다. 독특한 문양의 유리창문과 건물 외벽 등 주택의 흔적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장치는 그대로 남겼다. 대문에도 색만 덧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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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앙동 ‘마산다방’. 서성훈 대표가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작업실 겸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서 대표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 공간에서 감성을 느낀다고 한다. 낡은 것이 주는 편안함일 것”이라며 “할머니집이나 옛날 살았던 집에 대한 추억들이 환기돼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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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합포구 브라운핸즈 카페



    2015년 8월 문을 연 마산 가포동 브라운핸즈 카페는 이미 지역명소로 자리 잡았다. 한때 마산에서 가장 큰 운수업체였던 시민버스가 차고지로 쓰던 공간을 카페로 개조했다. 이곳은 원래 가구디자인 브랜드인 브라운핸즈의 디자이너 2명이 디자인한 공간이다. 우연히 둘 다 마산 출신이었던 디자이너들이 디자인 의뢰를 받은 후 건물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하는 것을 제안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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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차고지를 개조한 마산합포구 브라운핸즈 카페.



    브라운핸즈 카페는 외벽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예전 차고지였던 흔적을 최대한 살렸다. 건물 내외부에 일체 페인트 칠을 하지 않아 외벽의 ‘안전제일’, 내벽의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는 문구와 벨트 치수가 적힌 숫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공장에서 사용했던 스프링클러나 각종 공구도 곳곳에 남겨 뒀다. 양은냄비로 만든 샹들리에나 전후(戰後) 시기 사용했던 램프 등으로 공장이 지닌 감성을 재현했다. 마산 브라운핸즈 박승규 사장은 “마산, 창원에서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서울 등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처음에는 이런 낡은 느낌의 디자인을 반대했었는데 지금은 아주 만족한다”고 말했다.

    ◆관심은 높지만 아직 먼 갈길= 재생건축은 ‘도시재생’이 가장 큰 화두가 되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지역의 문화, 역사를 되살리는 도시재생은 그 지역의 역사를 담고 있는 건물을 복원하는 작업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는 재생건축과 관련된 인프라가 여러모로 부족한 상황이다. 수십년 동안 아파트로 대변되는 콘크리트 건축이 주류를 이뤄온 탓에 축적된 경험이 없어 재생건축을 뒷받침할 인력이나 장비, 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박진석 경남대 건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재생건축과 관련된 산업이 없다. 이런 것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며 “유럽은 100년, 200년 된 주택도 계속 수리하고 고쳐서 쓰니까 기존 건물을 보강하고 손보는 것은 동네 건축업자도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재생건축과 관련된 전문 건축인력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고 이들의 인건비도 너무 비싸다. 그래서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든다. 시공하는 사람도 인부들이 작업을 못 따라 오니까 기피하는 편이고 여러모로 열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직된 건축법도 개선돼야 할 점으로 꼽힌다. 관(官)이 아닌 민간에서 이런 시도를 하려는 경우 행정적으로 걸림돌이 많다는 것이다.

    서성훈 대표는 “새로운 것을 짓는 데는 별다른 제약이 없지만 기존의 건물을 손대려고 하면 많은 부분이 발목을 잡는다. 각종 허가가 까다롭고 소방법 등을 이유로 디자인한 부분을 도려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용도변경을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을 맞춰야 하는데 낡은 건물의 경우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기 어렵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결국 허무는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럴 땐 답답함이 크다”며 “오래된 건물을 새 공간으로 바꾸는 것은 디테일이 중요한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재생건축의 가치나 필요성을 생각하면 행정이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도 필요하다. 정성문 창원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물은 지가 등 개인의 이익과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아 보존이 되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 또한 재생건축물은 공동체에서 가치를 인정하고 향유할 때 진정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식 변화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세정 기자 sj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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