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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언지예 아이라예 말못해예”- 이종구(정치부 서울본부장·국장)

  • 기사입력 : 2017-09-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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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의 부산지역 최측근 인사로 알려진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자질 논란에 휩싸여 사퇴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류 처장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의원들은 류 처장이 ‘살충제 계란’ 파동에 이어 ‘생리대 유해성’ 논란과 ‘소시지 E형 간염’ 논란까지 식약처 관련 대형 이슈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한목소리로 사퇴를 촉구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류 처장의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며 “본래의 직업으로 돌아가는 게 대통령을 위한 길이고, 처장 개인을 위한 길이고, 국민을 위한 길이라는 걸 명심하라”고 꼬집었고,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도 “원래 계시던 곳으로 가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고 했다. 특히 한국당 윤상직 의원은 박근혜 정부 당시 자질 논란에 휩싸여 조기에 물러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데자뷔(기시감)’ 현상이 일어난다고 비판했다. 여당인 민주당의 한 의원도 최근 각종 파동의 원인을 전 정권에 있다고 둘러대는 류 처장을 향해 “지금은 처장이 책임을 지고 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이런 가운데 한국당 소속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류 처장의 사투리 사용을 문제 삼으면서 ‘사투리 비하’ 논란이 일고 있다. 권 위원장은 이날 류 처장이 질의답변 도중 “잠깐만예”, “뭐라고예?”, “그거 말이지예” 등의 경상도 사투리를 쓰자 “국회에 나와서 답변할 때 사투리부터 고쳐라. ‘잠깐만예’를 ‘잠깐만요’라고 하든가 ‘잠깐만 기다리십시오’라고 해야지 사투리를 쓰니까 더 이상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또 누군가가 류 처장의 사투리를 따라 하며 웃는 상황까지 벌어져, 사투리가 놀림감이 됐다. 권 위원장의 발언은 본인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무능한 사람이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까 더 이상하게 보인다”는 말로 들렸다. 이는 달리 말해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 무능해 보인다”는 말로 해석됐다.

    물론 류 처장이 식약처장으로서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고 살충제 계란 파동 등 잇단 사건에 우물쭈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의원들의 사퇴압박도 충분히 공감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류 처장의 자질 논란과는 별개로 권 위원장의 사투리 지적은 아주 부적절했다.

    경상도 사투리는 전라도나 충청도 등 다른 지역 사투리와는 달리 어지간히 서울생활을 해서는 잘 고쳐지지 않는다. 거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중·고교를 다닌 뒤 평생을 서울에서 산 YS(고 김영삼 전 대통령)도 사투리를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학실히”(확실히), “간강도시(관광도시)”가 그의 캐릭터가 되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통영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부산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류 처장이 경상도 사투리를 안 쓴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아이가.”(이상하지 않겠는가).

    기자도 만 3년째 서울생활을 하고 있지만 지인들로부터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다는 놀림을 종종 받는다. 나름대로 노래에 자신이 있어 가끔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잡다 보면, 싱긋이 웃는 일행이 있다. 대부분 노래 가사 중 ‘ㅓ’와 ‘ㅡ’를 구분하지 않고 불러서이다. 심수봉의 ‘여자이니까’를 조용히 불러본다. “사랑한다 말할까, 좋아한다 말할까, 언지예 아이라예 말못해예, 나는 여자이니까.”

    이종구 (정치부 서울본부장·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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