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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우리는 행복해지고 있을까- 이상규(정치부장)

  • 기사입력 : 2017-08-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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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세대들은 종종 “옛날에는 못살았지만 사람 사는 재미가 있었다”고 말한다. 시간이 지난 뒤 힘든 시절의 추억을 아름답게 그려 보려는 그들의 주관적 판단 때문일까. 삼시세끼조차 해결할 수 없는 시절의 기억이라면 이 이야기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1970년대를 지나 가난이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 시점이라면 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 일정한 수준의 가난에서 벗어나면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는 크게 없다고 하니 그럴수도 있겠다.

    2017년 현재, 주변의 일상을 보면 모든 세대에서 예전보다 정말 행복해졌는지 의문이 든다. 어린아이들은 혼자 걸을 때쯤 되면 부모 품에서 자라지 못하고 어린이집에 맡겨진다. 이어 초등학교부터 좋은 대학을 목표로 무한경쟁에 내던져진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그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거의 모든 시간을 공부하는 데 보내야 한다. 고등학교 3년은 무한경쟁의 결정판이다. 이들은 ‘인 서울’을 위해 하루 12시간 이상 책과 씨름한다. 어찌어찌해 대학에 들어가도 이제는 취직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필자 세대엔 그래도 대학만 들어가면 학생운동을 하든 고시준비를 하든, 그냥 술 마시고 당구 치고 연애하고 그럭저럭 졸업만 해도 웬만한 일자리는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외국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온갖 스펙을 쌓아도 직장을 구하지 못한다. 그러니 결혼은 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청년 세대 가운데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로 특권층으로 보일 정도이다.

    기성세대는 어떤가. 우리 경제의 주축인 40~50대 역시 사정이 썩 나아 보이진 않는다. 그들은 부모세대처럼 자식 교육시키는 데 거의 모든 걸 쏟아부어 스스로의 미래는 준비하지 못한 채 ‘왜소한 직장인’으로 퇴직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들은 어렵게 대학까지 보낸 자식들이 취직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다. 또한 자신들을 위해 희생한 부모들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데 대해서도 미안함을 갖는다.

    은퇴한 선배들은 삼식이가 되지 않으려 매일 등산을 하고 탁구를 치고 하지만, 그들에게서 노년의 평온과 느긋함을 찾기란 힘들다. 100세 시대를 맞아 노년기는 더 늘었지만 삶의 질이 더 풍요로워졌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이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불안’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란 책을 읽으면서 역사가 진화하면서 인간의 행복이 증진됐는지에 대한 의문은 더 커진다. 그에 따르면 1만2000년 전 인간은 농업혁명을 이뤘지만 삶의 질은 향상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농업 덕택에 농산물의 생산량은 늘고 인구 또한 급증했지만, 인간은 더 많은 노동을 해야 살 수 있게 됐다. 그는 인류가 밀을 길들인 게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였다고 표현했다. 그는 앞으로 인간의 수명은 생명공학 혁명 덕분에 100세 시대를 넘어 영생에 가깝게 살 수 있지만, 한없이 늘어난 수명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오늘날 보통 사람은 조선시대 임금이 먹던 것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더 넓고 신기한 세상을 구경한다. 그럼에도 어느 세대를 불문하고 행복의 징후는 찾을 수 없으니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을까. 그리고 이런 상황이 다음 세대에도 계속되어야 할까.

    이상규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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