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은행의 수장이었다. 아니, 수장 중의 수장이었다. 금융지주의 회장이면서 행장이기도 했다. 자연히 입김이 셌다. 그는 조직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유일한 사내이사였다. 이사회는 그의 주도하에 운영됐고, 안건에 대한 반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는 2019년까지 두루두루 장(長) 소리를 들으며 비단길을 걸을 수 있었다. 170억원대 자사주 시세조종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성세환 BNK금융지주 회장 겸 부산은행장 이야기다.
성 회장이 구속된 지난 4월부터 BNK금융지주 경영은 공백상태에 머물러 있다. 자연히 ‘새로운 피 수혈’ 요구가 빗발쳤고 회장과 은행장 권한을 1인이 독점하는 제왕적 겸직구조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이사회는 회장·행장 분리안을 의결했고,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외부 인사에게도 차기 회장 문호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부산은행 노조와 부산지역 시민단체들이 ‘외부 인사 영입’은 정치권에 의한 ‘낙하산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반발하고 있다. 논리의 근거는 ‘BNK금융지주가 지역경제의 심장과 혈맥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은 지역경제를 잘 이해하는 내부 최고경영자가 지속해서 발탁됐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내부인사, 즉 ‘순혈’만이 심장을 뛰게하고 혈맥을 튼튼하게 하는가. 2011년 금융지주사로 전환한 뒤 ‘순혈’인 이장호·성세환 회장이 차례대로 회장과 부산은행장을 겸했지만 성 회장은 주가조작, 이 전 회장은 엘시티 특혜 논란 수사대상에 올라있다. 깨끗한 피도 고이면 썩게 마련이며, 엄밀히 따져 더이상 BNK금융지주는 순혈이라 볼 수 없다. 2014년 부산은행은 경남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경남·울산·부산 지역금융에 더욱 원활하게 피를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어제 오후 5시를 기해 차기 회장 공모가 마감됐다. 지역금융의 수장 자리를 노리는 물밑작업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계도를 따질 때가 아니다. ‘낙하산 인사를 경계하되, 도덕적 흠결 없이 지역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사라면 내·외부를 가리지 않겠다’는 논리가 더 온당하다. 그것이 BNK금융지주를 믿고 신뢰해 온 지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김유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