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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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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후손이 잘되어야 명당이다

  • 기사입력 : 2017-07-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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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에 위치한 광주향교(光州鄕校)는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던 해(서기 1392년)에 각도 (各道)의 안찰사에게 교육을 개혁하라는 명을 내린 것을 계기로 서석산 (현 무등산) 서쪽 장원봉 아래에 세워졌으나,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서 성의 동문 안으로 옮겨 지었다.

    그러나 성종 19년(서기 1488년) 현감 권수평이 이곳 또한 지대가 낮고 수해가 자주 일어나자 지금의 광주공원 자리로 옮겨 지었다.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앞쪽은 강학공간, 뒤쪽은 배향공간)의 형태로 공자를 비롯한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 등 5성(聖)과 송나라 2현(賢)과 우리나라 18현(賢) 등 25성현(聖賢)을 모시고 봄·가을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향교 입구의 우측에 둔 ‘하마비(下馬碑)’는 대인, 소인을 막론하고 향교 앞을 지나갈 때에는 말에서 내려 조용히 지나가라는 표지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였다.

    현재의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이라 불렸는데, 산의 형상이 거북처럼 생겼으며 거북 형상의 다리 부위에 향교가 있다. 풍수설에 의하면 거북의 등 부위(현충탑)에 절을 세우기만 하면 허물어져서 거북이가 요동을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먼저 거북의 목 부분에 성거사지 오층석탑을 건립한 후에 절을 세우니 무너지지 않았다 한다. 향교를 거북의 뒷다리 부위에 건립한 것은 거북은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인재가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거북의 머리는 광주천이 감싸고 흐르는 신시가지를 향하고 있는데, 이를 ‘갈귀음수형(渴龜飮水形·목 마른 거북이가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 한다.

    ‘윤달’은 음력에서 1년이 양력 1년보다 약 11일 짧은 것을 해결하기 위해 2~3년에 한 번씩 끼워 넣는 달로 여벌달 또는 공달이라고도 한다. 2017년(丁酉年)은 윤5월(양력 6월 24일~7월 22일)이며 윤달에는 수의(壽衣)를 만들거나 음택(陰宅·무덤)과 관련된 일을 해도 해가 없다 해 무덤들을 화장(火葬)하여 가족묘원을 조성하거나 평소에 조상의 묏자리가 흉하다고 믿던 이들은 좋은 자리를 정해 이장 (移葬)을 한다. 만일 매장 및 이장을 위한 ‘터’를 찾고자 할 때는 ‘명당’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발복(發福)할 수 있는 ‘무해지지·無害之地’이면 족함을 알자. 몇 년 전, 공장을 경영하는 사장이 부모님을 이장할 목적으로 지관을 통해 지리산의 모처에 천하의 명당을 찾았다면서 필자에게 최종 감정을 의뢰했다. 지리산은 국립공원이라 절대 이장을 하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명산에 명혈 없다’는 말도 해줬지만, 막무가내로 간청을 하는 바람에 동행을 하게 됐다. 3시간이나 산을 타고 현장을 감결해본 결과 경사가 급하게 떨어지는 곳으로 땅속에 좋은 흙은 없고 돌만 가득한 ‘천하의 흉지’였다.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한 사장에게 부모님을 명당에 모시려는 효성스런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관의 꼬임에 빠져 법을 어기면서까지 첩첩산중에 이장하는 것은 오히려 불효가 됨을 단단히 일러줬다.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조선 인조 때의 무신 전상의(1575~1627) 장군 묘가 있다. 정묘호란 당시 안주성 전투에서 끝까지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적들이 “충신열사의 주검은 소중하게 모셔야 한다”고 말하며 따로 무덤을 만들고 표를 세웠다. ‘좋은 터의 요건’을 갖췄는지 확인하고자 최근에 들렀던 곳이다. 첫째, 주산은 품위와 위용이 있었다. 둘째, 용맥(龍脈·산줄기)은 좌우로 요동하면서 속기(束氣·산줄기를 좁혀 氣를 묶음)가 되었다. 셋째, 추한 골이 없고 단단한 흙이 쌓였다. 넷째, 혈판(穴坂·산소와 그 주변)은 단정하면서 생기가 흘렀다. 창원시 북면 대산리의 사리실 마을 뒷산에 조선 초기의 무장 최윤덕(1376~1445) 장군의 묘가 있다. 앞쪽에 장군의 묘가 있고 그 뒤쪽에 부인인 성주 도씨의 묘가 있다. 용맥은 좌우요동을 하며 생룡(生龍)의 모습을 갖추었고 혈판도 힘이 있으며 좌청룡, 우백호는 위용이 있다. 그러나 혈(穴)자리는 장군의 묘가 아닌 부인의 자리였다. ‘명당의 여부’는 자연의 조건을 보지만, 필자는 후손의 발복 상황을 조사해 최종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주재민 (화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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