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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시험- 양영석 문화체육부장

  • 기사입력 : 2017-06-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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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회에는 일등부터 꼴찌까지 서열이 존재한다. 서열이 높을수록 많은 혜택과 안락한 삶을 보장받는다. 그 서열을 결정하는 수단은 시험이다. 시험은 총점, 석차, 등급, 표준편차 등 다양한 통계치를 이용해 사람을 서열화하고 그에 따라 학벌이 결정된다. 통계치에 의해 숫자화된 개인에게서 삶의 이력은 중요치 않다. 단지 위로부터 혹은 아래로부터 몇 번째에 있는지, 그에 따라 어느 대학, 기업체에 선발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고려·조선시대 과거를 비롯해 수천년 동안 시험이 서열과 지위를 분배해 왔다. 각종 고시와 시험으로 사회 엘리트를 선발해 왔기 때문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하면 수십년 경력을 쌓아도 올라가기 어려운 자리를 단번에 꿰찰 수 있는 등 특권이 당연시 여겨져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출세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낳았다. 그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 오랫동안 시험공부가 학교 교육을 대체해 수많은 아이들이 입시나 성적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시험준비에 드는 비싼 사교육비는 학부모들의 등골을 휘게 하고 있다.

    ▼한국인 다수가 시험을 통해 성공한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갖는 것이 능력에 따른 정당한 분배이며 그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시험이 그 자체의 공정성을 담보하기도 쉽지 않지만, 시험이 사회의 공정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시험 기회가 공정해지고 시험 결과가 투명하다고 살 만한 사회가 되지 않는다. 어떤 학교를 나왔든, 무엇을 하든 인간으로서 자존을 누리며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제도가 문제다.

    ▼네덜란드에서는 수험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의대나 법대 학생들을 추첨으로 선발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기본점수만 되면 모두 추첨대상이다. 누구에게나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고, 훌륭한 의사나 판검사를 만드는 데 성적과 학업능력이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의대생과 법대생을 제비뽑기로 뽑지만 학업에 나태하거나 학력이 저하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시험 잘 치는 사람이 능력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양영석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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