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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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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9) 창원 소답떡방앗간

찌고 빻고 볶으며 情 나누던, 그 골목 그 집

  • 기사입력 : 2017-06-15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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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거렁 스거렁 슥슥 슥슥, 치익~치치익~치~”

    분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한 방앗간 안 풍경이 정겹다. 떡시루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소한 참깨 내음이 방앗간을 진동한다.

    ‘덜그럭~ 덜그럭~ 삑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참깨 볶음용 기계(로스팅)는 세월의 향기를 그대로 품은 듯 손때 묻은 자욱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옅은 녹색의 양철지붕 위로 빛바랜 노란 간판이 힘겹게 버티고 서 있는 ‘소답떡방앗간’ 안 풍경은 시간이 멈춘 듯하다. 1980년대 초반 풍경이 방앗간 안에 그대로 녹아 있다. 한 발짝만 벗어나면 도심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은 방앗간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지~직거리는 빨간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방앗간의 요란한 소리가 하나의 음이 되어 돌아온다. 오래된 6개의 나무기둥이 방앗간을 온전히 받치고 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은 듯 힘겨워 보인다. 기둥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요즘에는 찾아보기조차 힘든 110v콘센트를 비롯해 전원을 차단하는 일명 두꺼비집이 덩그러니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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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때는 장작 스팀보일러(왼쪽)를 이용해 쑥설기를 만들고 있는 소답떡방앗간 정란아씨.


    35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방앗간을 지켜온 노부부 이성문(72)·정란아(67)씨는 오늘도 방앗간 지킴이로 하루를 시작한다.

    창원 소답동 의안로 43번길에 위치한 ‘창원 소답떡방앗간’은 나름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1982년 이씨 부부가 방앗간을 인수하기 전 이곳은 정미소였다. 이씨는 “주인이 3번 바뀌면서 지금은 떡방앗간으로 변했지만 예전에 호황을 누렸던 정미소였다. 정확히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정미소로 추정되니깐 100년 가까운 세월을 견딘 나름 창원의 명물이다”고 설명한다.

    당시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정미소는 경운기에 싣고 온 나락을 찧어 가려는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나락을 찧으러 온 사람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나락 찧는 것을 기다렸을 정도라니 가히 상상이 된다. 인근에 방앗간이 없어 추수철이 되면 방앗간 앞마당엔 나락가마니가 제법 쌓여 밤늦게까지 불을 켜 놓고 기계를 돌렸다고 주인장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씨가 방앗간을 인수할 무렵 경제상황이 여의치 않아 방앗간 운영만으로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과감히 정미소를 접고, 떡방앗간으로 새롭게 변신을 시도했다. 다행히 입소문을 타고 소답떡방앗간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소답떡방앗간을 찾는 이들은 간혹 지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오랜 세월을 함께한 단골손님들이다. 소답동은 물론 인근 지역에서 소답떡방앗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떡이 맛있는 방앗간’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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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씨는 소답떡방앗간 떡이 맛있는 첫 번째 이유는 “나무로 땐 장작 스팀보일러에서 뿜어져 나오는 충분한 수증기로 뜸을 들여 야무지게 익혀서 주니깐 떡이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소답떡방앗간은 다른 떡방앗간과 달리 나무로 물을 데워 뜨거운 수증기로 떡을 찐다. 다른 방앗간들은 기름이나 가스를 사용해 떡을 찌기에 충분한 뜸을 들일 수 없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기에 손님들이 가져 온 재료를 있는 그대로 모두 사용해 떡을 만들기에 다른 곳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 모든 것이 장작 스팀보일러가 있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돌아보면 재밌는 이야기지만 당시 장작 스팀보일러는 나무 구하기가 어려워 곤란을 겪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목욕탕에서 나무로 물을 데웠는데 집을 허물면 폐나무 등을 목욕탕 주인이 먼저 사서 가져가고, 버려진 나무를 주워와 불을 피웠기에 나무 구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기름보일러가 나오면서 목욕탕이 나무 대신 기름을 사용하면서 나무는 천덕꾸러기로 변해 손쉽게 나무를 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떡방앗간의 모든 분쇄기와 기구들은 이 씨 부부가 처음 떡방앗간을 새롭게 만들 때 들여온 35년 된 오래된 친구들이다. 장작 스팀보일러를 비롯해 쌀 분쇄기, 잡곡분쇄기, 미숫가루 분쇄기, 고추분쇄기 등 6개의 분쇄기들이 35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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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방앗간의 각종 분쇄기들을 설명하는 이성문씨.


    “요즘 생산되는 신식기계들은 전원을 넣으면 각 개인별로 분쇄기가 돌아가지만 여기는 벨트를 통해 한꺼번에 돌아가게끔 되어 있어요. 대신 필요에 따라 각 분쇄기에 기어를 넣어 작동하는 방식으로 돌리기에 불편함은 없어요. 기름을 잘 주고 관리를 잘해서 고장이 없어요”라며 웃음을 짓는다. 지금은 고물처럼 보이지만 오랜 세월 동고동락(同苦同樂)했기에 기계소리만 들어도 어느 부분이 고장인 줄 단번에 알아차린다. 웬만한 고장은 자신이 직접 고친다. 부속품만 사오면 밤새 수리해 날이 밝으면 떡방앗간이 돌아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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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 떡방앗간을 버티고 있는 손때 묻은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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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깨볶음기 위에 놓인 참깨 쓸어내는 빗자루가 세월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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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방앗간을 찾은 인근 주민들.

    그의 손놀림에 멈췄던 기계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간다. 마치 ‘아직은 쓸 만하다!’고 자신을 뽐내기라도 하듯.

    35세의 젊은 나이에 떡방앗간을 시작해 71세가 될 때까지 35년 넘게 일을 하면서 아들 셋을 키웠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손때 묻은 이 기계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움이다.

    창원 소답동떡방앗간은 이제 얼마 후면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진다. 창원시에서 추진 중인 ‘창원읍성 동문지 복원사업’에 편성돼 빠르면 올해, 아니면 내년 중 모두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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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답떡방앗간 전경.


    시는 이를 위해 방앗간을 제외한 인근의 땅을 모두 매입한 상태며, 방앗간이 매입되면 조만간 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한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이씨는 “오래됐지만 아직 쓸 만한 기계들인데…. 가져갈 사람이 있으면 그냥 주겠는데, 아무래도 오래된 기계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을 거 같다”며 긴 한숨을 내쉰다. 당시 돈이 부족해 비싼 기계는 못샀지만 부품을 구입해 하나하나 조립하고 기름칠해 사용하는 데엔 전혀 부족함이 없다. 찾는 이가 없으면 방앗간 분쇄기 등은 고물상으로 팔려갈 것이다. 손때 묻은 방앗간 기구들을 살펴보며 깊은 상념에 잠긴 이씨의 눈에 물방울이 아른거린다.

    인근의 주민들은 한결같이 소답떡방앗간이 사라지는 것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떡방앗간을 사랑방처럼 드나들던 주민 박연아(68)씨는 “비록 낡고 오래된 방앗간이지만 정이 넘치는 공간이었다. 때로는 부족한 쌀과 재료를 가져와도 알아서 챙겨줘 참 좋았는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안타까움이 절절이 묻어난다. 언제나 오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하다. 도시화의 물결로 옛 전통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그리워하는 것은 아마도 정 때문이지 않을까?

    글·사진= 이준희 기자 jh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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