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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털(毛)- 조고운 뉴미디어부 기자

  • 기사입력 : 2017-05-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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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모기가 맨다리를 스칠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여름이 시작됐고, 스타킹을 벗어야 했고, 털을 뽑아내야 했다. 깎거나 녹이거나 뽑거나, 그 방식은 변했지만 10대 후반부터 20년째 반복하는 일이다. 문제는 제모의 고통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끈거리는 다리를 매만지는데 반바지를 입은 남편이 지나간다. 그의 정강이에 자유롭게 솟아난 털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영화 ‘러브픽션’에는 겨털녀(겨드랑이에 털이 난 여자) 희진(공효진)이 등장한다. 희진은 애인 주월(하정우)이 자신의 ‘겨털’을 보고 당황하자, “고향(알래스카)에서는 다 기른다. 이게 뭐가 어떻냐”며 당당히 되묻는다. 주월은 그런 그녀가 더 매력적이다. 그러나 결국 ‘겨털’은 둘에게 큰 갈등요소가 된다. 우리사회에서 여성의 체모 관리는 선택보다는 필수에 가깝다. 여성의 털을 그대로 노출하면 불경스럽거나 불편하게 여긴다. 강요되는 미(美)에 대해 ‘여성의 신체를 향한 유해한 검열’이라며 반발하는 여성들도 있다.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의 흰머리가 화제다. 강 후보는 “본모습을 뭔가로 가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2008년부터 염색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일하는 제네바는 내 반백머리에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여성 인사의 흰머리는 낯설다. 흰머리가 나이 듦이 아닌 지성인의 상징이 될 수 있음이 신선하다. 많은 중년여성들이 매월 치러내던 새치 염색의 중단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아름다움은 본질적으로 사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라 정의한다. 시대마다 사회가 추구하는 통념적인 아름다움은 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은 모르겠다. 다만 기준에서 당당히 벗어날 수 있는 자유는 원한다. 털이 이성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털이 센 여성을 단정치 못하다 말하는 세상은 좀 이상하다. 내 털 내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세상에 살고 싶다. 제모나 염색을 하거나 말거나 말이다.

    조고운 뉴미디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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