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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25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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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25시] 49기 이한얼 (6) 수습기간을 마치며

  • 기사입력 : 2017-05-19 15: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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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일 밤 집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선배들의 좋은 뉴스기사를 따라 써보기도 하고, 수습기자 25시를 써가며 글쓰기를 연습했건만 좋은 글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각 기관에서 쏟아지는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스트레이트 기사를 작성해 보지만 한 단어 한 단어마다 머리를 싸매며 투자하는 시간은 도통 줄지를 않는다. 탈수습을 기다리며 몇 주 전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다. '나는 기자가 될 준비가 됐을까?'

    인사도 제대로 할 줄 몰라 우물쭈물하고 혼나기도 많이 혼나던, 소위 기본도 안 된 '수습기자'가 이제는 '기자'가 된단다. 계절과 함께 내 신분이 바뀌었고 대통령도 바뀌었다. 때로 전부 변했는데 나만 그대로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제부터 혼자서 완성된 기사를 생산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 위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부담이 가중돼 설렘보다는 긴장감에 굳어있는 시간이 늘어난다. 내가 준비돼 있지 않더라도 수습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냉정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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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내가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수습기자 연수도 다녀오고 여러 부서를 돌며 많은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다. '입사 전엔 아무것도 모르던 언론바보가 정규 교육을 3개월이나 받았으니 제법 구실은 할 수 있을 것이다'며 매일 스스로 최면을 건다. 그래도 선배의 동행 없이 혼자 취재현장에 던져져 보기도 했고, 좋은 기사는 아니었지만 뭐라도 써들고 회사로 복귀한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서서히 변화해 오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 부서를 돌며 많은 선배님들께 교육을 받았다. 선배마다 스타일은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취재를 하고 매일 많게는 서너개씩 기사를 뽑아내던 선배들은 전부 '프로'였다.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기사에 책임을 질 줄 알았고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기사 내용으로 클레임이 들어올 때도 선배들은 정확한 논거를 갖고 상대방이 반박할 수 없게끔 당당히 대처했다. 나와 선배들의 차이는 단 하나였지만 그 갭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컸다.

    당분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만의 출입처가 생기면 선임 출입선배에게 인수인계는 받겠지만 시행착오는 불가피하다. 때로는 거리도 안 되는 형편없는 기사를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기자로서 내 모든 기사에 자부심을 갖고 책임을 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 매 기사 작성 시 선배들처럼 정확한 논거를 마련하고 누구보다 철저히 검토하고, 발로 뛸 생각이다. 선배들에게 배운 '발로 쓰는 기사'를 모토로 기술적으로 잘 쓰는 기사보다 팩트에 입각해 진정성 있는 기사를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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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지나간 3개월이었다. 선배들이 보여준 사랑과 믿음에 부합하는 후배가 될 수 있도록, 도민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기자가 되도록 정진하겠다. 이 자리를 빌어 선배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제 수습기자 이한얼이 아닌 기자로서 어떤 난관도 이겨내는 이 기자로 찾아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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