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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공간 (8) 마산합포구 신신예식장

50년간 1만3000쌍 결혼… 작지만 특별한 ‘작은결혼식’

  • 기사입력 : 2017-05-18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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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면부지 두 남녀가 서로를 반려로 삼아 가정을 꾸리는 이 과정은 예로부터 성스럽고 복된 일이었다. 오죽하면 ‘결혼’을 인륜지대사라고 불렀을까.

    우리나라의 전통혼례 하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족두리를 얹은 신부와 사모관대 차림을 한 신랑이 맞절을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다 1910년 이후 신문물을 받아들인 모던걸들은 ‘명월관’같이 큰 식당에서 새하얀 드레스와 연미복 스타일의 양장을 입은 서양식 결혼식을 선호하게 됐다. 이후 가내에서 이뤄지던 폐백마저 산업 발전으로 예식장에서 하게 되면서 1960년대 후반부터 예식장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평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을 위해 호화로운 드레스와 예식장을 찾는 이들이 점차 늘면서 결혼식 비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최근엔 예식장과 웨딩드레스 대여에 하객 식사, 꽃 장식 등 결혼식 비용에만 수천만원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돈이 없어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숱하다는 보도가 연일 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온다. 허례허식으로 포장돼 혼인의 참 의미가 퇴색된다며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다. 작은 결혼식이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들보다 이른 수십년 전부터 작은 결혼식을 행하고 있는 곳이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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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67년 개업한 이후 50년간 무료로 예식을 해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의 신신예식장 내부.

    옛 정취 물씬 나는 골목길 한가운데 자리한 알록달록한 3층짜리 건물엔 마산에서 가장 오래된 예식장이 있다. 올해로 문을 연 지 꼭 50년이 된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신신예식장’이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데 드는 비용은 고작 70만원. 이 비용에는 예식장 대여는 물론이고 신랑 턱시도와 신부 드레스, 티아라, 부케, 메이크업, 폐백음식까지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돼 있다. 사실상 신랑 신부는 주인장이 찍어주는 사진값 70만원만 내면 되니 예식비용은 무료인 셈이다. 좁고 오래됐다고 얕봤다간 큰코다친다.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웨딩홀부터 피아노, 신부 대기실까지 있을 건 다 있다. 필요하면 사회, 주례, 들러리까지 꼼꼼하게 마련해준다. 수십 년 동안 같은 곳에서 자리를 지킨 주인 백낙삼(87)씨가 결혼식의 변천사와 신신예식장에 묻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1967년 6월 1일 문을 연 신신예식장의 시작은 7평짜리 목소 슬레이트 2층 건물에 개업한 사진관이었다. 사진을 꽤 잘 찍는다고 소문이 나 1년 만에 바로 옆의 철근 콘크리트 2층짜리 건물을 당시 142만원에 구입했다. 백씨는 이 건물들을 연결해 돈이 없어서 결혼 못하는 이들을 위한 결혼식장을 만들었다. 1960~1970년대 결혼식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웨딩드레스와 신부화장이 화려해졌고, 축의금도 하얀색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당시엔 축의금 봉투를 건네면 찹쌀떡이나 카스텔라를 나눠줬는데 이것을 받으려고 줄을 서기도 했다고 한다. 화려한 결혼식장 대신 무료 예식장을 운영한 이유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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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씨는 “서양식으로 화려하게 결혼하는 이도 있었지만 그 당시엔 지금보다 어려운 시대였으니 식을 못 올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저도 형편이 어려워 31살이 되어서야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식 올리는 것으로 노총각 딱지를 뗐거든요.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사진값 6000원만 지불하면 결혼식장을 무료로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첫걸음을 회상했다. 당시로는 최신식 예식장인 데다 가격도 저렴해 문전성시를 이뤘다. 1개 식장에서 하루에 17쌍이 혼례를 치르기도 했단다. 세 명의 사진사를 포함해 직원이 십수 명이었다. 잘 나가는 예식장 덕택에 옆집 세 채를 더 매입한 뒤 증축해 지금의 건물 형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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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입구엔 웨딩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이 서 있는데, 1970년대 유행하던 드레스 디자인으로 고전미가 살아 있다. 두 마리 금색 봉황 사이에 ‘新郞 김학윤 君 新婦 이종자 孃’이라고 붓글씨로 쓴 종이가 붙어 있는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왼쪽 표시의 화살표 아래 폐백실, 사무실, 응접실이라고 적혀 있고, 오른쪽 표시의 화살표 아래엔 예식장이라고 쓰여 있다. 안내에 따라 사무실에 들어가니 테두리가 제각각인 액자가 수십 개 걸려 있다. 모두 이곳에서 결혼한 커플들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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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신예식장 외부.


    지금까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린 부부만 1만3000쌍이 넘는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지닌 부부들이 많겠다는 물음에 주인장은 ‘신신사기(新新史記)’을 보여줬다. 사진과 자료, 편지 등 50년 신신예식장 기록을 한데 모은 책장을 넘기며 기억을 더듬던 백씨는 고심 끝에 세 쌍을 소개했다. “부산에서 편지가 왔어요. 칠순을 앞둔 이였는데, 십수 년간 같이 살면서 형편이 어렵다는 핑계로 면사포를 못 씌워준 아내에게 미안해 식을 올리고 싶다고요. 식을 올리고 나서도 고맙다고 편지를 계속 보내더라고요.” 그이를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같은 사연을 가진 이들이 찾아왔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며 지역 특산물을 철마다 보내기도 한단다.

    이어 정반대의 사연을 소개했다. 서울에서 무역업을 크게 하는 젊은 부부인데, 결혼 준비를 하다 보니 수억원이 들어 그럴 바엔 그 돈을 의미있는 곳에 쓰고 결혼식을 간소하게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수소문 끝에 찾아왔단다. 백씨는 “마음이 이쁘지 않아요? 진정한 결혼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부부였어요. 크게 만족해하면서 돌아갔죠”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앨범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외국인 신랑을 언급했다. 러시아에서 귀화해 한국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유명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교수였다. 어떠한 인연이 있는지 묻자 백씨는 싱긋 웃으며 사위라고 답했다. “셋째 딸이 바이올린을 전공했거든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으로 유학을 보냈더니 사위를 데려왔습니다. 외국인 사위라니 처음엔 당황했지만 결혼은 둘이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반대할 이유가 없죠. 막내딸도 일본인 사위를 데려왔는 걸요”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6남매 모두가 신신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 가족 이야기와 아르헨티나에서 30시간을 날아와 식을 올린 이들 이야기 등 이야기보따리를 한동안 풀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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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식장 주인 백낙삼씨가 옛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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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신신예식장 백락삼 주인은 지난 1967년 개업한 이후 5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무료로 예식을 해오고 있다./김승권 기자/

    예식장은 지난 2014년에 영화에도 소개됐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국제시장’에서 덕수(황정민)의 여동생인 끝순이(김슬기 분)가 식을 올린 곳이 여기다. 영화 관계자가 당시 모습을 간직한 예식장이 필요하다고 연락이 왔는데, 신신예식장을 보고 흡족해하면서 장소로 정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장소만 나온 게 아니라 입구에 서 있는 1970년대 드레스를 협찬했고, 주인 백씨도 얼굴을 비췄다. “자, 여기 보세요. 찍습니다”라며 사진사로 나온 사람이 바로 그다.

    그런가 하면 그해 여름엔 창원조각비엔날레 전시장소로 활용되기도 했다. 영화에 출연한 것도, 전시장으로 쓰인 것도 한결같이 세월을 지켜와서라고 대답했다. “50년간 세 번 인테리어를 손봤는데, 다들 예전 모습 그대로가 좋다고 더 이상 손대지 말라고 하던데요”라며 껄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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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개업 당시 경남매일(현 경남신문)에 게재된 광고.


    백씨는 오는 6월 1일이면 50주년이 되는데, 선착순으로 100쌍을 받아 사진값으로 받던 70만원도 마다하고 완전 무료로 결혼식을 올려줄 참이란다. 구순을 내다보는 주인장은 “한창 땐 열댓 명의 직원이 같이 일했는데요, 이제 직원은 저와 아내 단둘이에요. 경제적, 체력적으로 가끔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계속 무료로 결혼식을 운영할 겁니다. 우리 식장엔 아무래도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주로 결혼을 치르다 보니 어느 결혼식장보다 눈물이 많아요. 이분들 눈물을 보면 그만둘 수가 없거든요”라고 말했다.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아끼고 사랑하라’는 결혼의 참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면 아름다운 사연이 곳곳에 배어 있는 이 공간에 들러보길 권한다.

    글= 정민주 기자 joo@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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