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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훔쳐보기’ 망측한 심리의 확산- 이상목(사회부장)

  • 기사입력 : 2017-05-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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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말이 있다. ‘관음증(觀淫症)을 가진 사람’이라는 심리학 용어다.

    훔쳐보는 톰으로 직역되는 이 말은 한 백작부인의 순수한 동기로부터 파생됐다. 11세기 잉글랜드 코번트리 지방에서 있었던 일화다. 이 지역 영주는 농노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다. 영주의 착한 부인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농노들의 생활고가 불쌍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남편에게 세금을 깎아주라고 요청했고 남편은 엉뚱한 역제안을 한다.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면 그 청을 들어주겠다”라고. 영주는 자기 아내가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성을 갖고 감세 요청을 했던 그 부인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녀는 어느 이른 아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말에 올라 영지를 돌기 시작했다. 그 소식은 모든 농노들에게 일시에 전파됐다. 그들은 호기심을 못 이기고 훔쳐볼 만도 했지만, 영주의 부인이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경의로운 사실에 하나같이 문을 걸어잠그고 커튼을 내려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솟구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재단사 톰(Tom)이었다. 몰래 훔쳐보기를 하던 그는 눈이 멀어버렸고, 이후 그의 이름을 따 관음증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됐다.

    6년 전인 2011년 미국 시카고 한복판에서는 영화 ‘7년 만의 외출’을 주연한 섹시 여배우 마릴린 먼로의 동상이 설치돼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너무나도 유명한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원피스 치맛자락을 두 손으로 잡는’ 장면을 재현한 조형물이었다. 8m 높이로 대형이어서 그 아래에 서면 자연스레 허벅지와 속옷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각지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렸고 짓궂은 남성들은 동상 아래에서 망측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해 지탄을 받기도 했다. 지각 있는 인사들은 ‘천박한 상업주의’라고 혹평했고, 사회학자들은 현대인들에게 관음증을 부추긴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당시 시카고 시민 10명 중 6명은 ‘예술품이기보다는 천박한 조형물’이라는 견해에 동의하면서 조형물 철거를 요구했다.

    우리네 관습 중에도 관음증을 용인하는 전통이 없지 않았다. 농경시대 전통혼례를 치른 신혼부부가 첫날밤을 지내던 날 하객이나 친척들이 신방 창호지에 구멍을 내 깔깔거리며 훔쳐보기를 하는 풍습이었다. 하지만 결코 정도가 심하지 않아 애교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렇듯 훔쳐보기는 동서고금을 떠나 인간 본능의 영역인지도 모른다. 높은 이성과 윤리로 제어될 뿐이다. 그런데 IT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몰래카메라와 야동의 유통이 늘면서 도를 넘고 있다.

    최근 모 지자체 소속 40대 남자 공무원이 자신이 근무하는 청사 내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하다 붙잡히는 부끄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일반인보다 더 높은 직업윤리가 요구되는 공무원의 이해할 수 없는 행위도 문제지만, 이 같은 관음증이 사회 일반에 널리 퍼져나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관음증은 이제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된 지 오래다. 홀로 어두운 공간에 숨어 타인의 삶과 은밀한 곳을 훔쳐보려는 심리가 망측하고 측은하다. 징벌만으로는 역부족인 듯하다. 공동체 윤리 재무장이 시급하다.

    이상목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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