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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완장과 관변단체- 이학수 정치부 부장대우

  • 기사입력 : 2017-04-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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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에 의탁해 사는 노인이 있었다. 행락철이면 그는 ‘취사금지’ 완장을 차고 순찰했다. 절 아래 계곡은 취사금지구역이었다. 행락객들이 삼겹살을 구워 한 점 먹을라치면 어김없이 그가 나타났다. 설왕설래 시비 끝에 행락객들은 싸온 음식을 얼마간 싸주며 마무리했다. 그는 먹을거리를 챙기고는 “다음부터 이러지 마라”며 선심을 베풀었다. 30년도 더 된 필자의 목격담이다. 그의 권세는 완장에서 나왔다.

    ▼완장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팔에 두르는 표장(標章)이다. 하잘것없는 사람도 완장을 차면 달라 보인다. 6·25 때 인민군 점령지에는 머슴 소작인들이 붉은 완장을 차고 설쳤다. 5·16군사 쿠데타 세력은 ‘혁명군’이라는 완장을 찼다. 하물며 중·고등학교도 주먹깨나 쓰는 아이들이 ‘선도’라는 완장을 차고 정문 앞에서 거들먹거렸다. 격동의 역사 속에 완장은 신분 과시이자 권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사람들은 우리 사회를 완장의 시대라고 말한다.

    ▼최근 명예도민감사관을 놓고 완장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임기를 다한 이들이 재위촉을 요구하면서 경남도와 갈등을 빚고 있다. 행정은 이들이 세력화해 완장질을 하며 민폐를 끼쳐 배제하겠단다. 그러나 전임 명예감사관들은 무보수로 봉사했는데 도의 처사가 지나치다는 반응이다. 명예직은 희생하는 자리다. 희생의 대가를 바란다면 진정한 희생이 아니다. 희생을 빙자한 욕망이자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한 거짓 희생일 뿐이다. 희생 없이 명예만 가질 수 없다.

    ▼앞으로 명예도민감사관은 시장·군수의 추천을 받은 인물로 구성한다. 시장·군수의 추천을 받은 인물이 그 시·군의 비리를 제대로 감시할 리 만무하다. 시·군정 자문위원에 그칠 것이다. 결국 시늉만 내는 관변단체 하나 더하지 않을까. 완장질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관변단체가 되어서도 안 된다. 지방자치시대 주민 참여는 행정이 중심이 아니라 주민이 중심이다. 명예도민감사관 논란을 보면서 완장과 관변단체가 오버랩된다.

    이학수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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