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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25시, 신조차 구원할 수 없는 시간- 이현우(시인)

  • 기사입력 : 2017-04-1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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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시는 나를 잃은 시간이다. 그 속에는 존재감이 없다. 그저 불가항력적인 힘에 의해 끌려다니는 노예가 있을 뿐이다. 거기서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힘은, 문명일 수도 있고 전쟁일 수도 있는 그 힘은, 모든 책임을 나에게로 돌린다.

    우리가 기뻐하고 슬퍼하는 일상의 시간 24시에는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 비록 그것이 망상이라 해도 또다시 해가 뜨는 내일이 있으므로 어두운 밤길조차 마다치 않는 것이다. 그러나 25시에는 태양이 뜨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당장 왕관을 쓴다 한들 소용이 없다. 절망 속에서는 모든 것이 의미를 상실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전쟁터로 끌려나가 100여 곳의 수용소를 전전한 후 1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루마니아의 농부 ‘요한 모리츠’. 그가 겪은 문명의 횡포를 적은 이야기가 소설 ‘25시’다. 그 속에는 모리츠가 걸어온 남의 시간이 자신의 것처럼 박제된 채 담겨 있다.

    주인공 모리츠뿐 아니라 누구라도 이따금 자신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삶을 사는 경우가 허다히 많다. 마치 회전하는 톱니 앞에 놓여 있는 생명처럼, 살기 위해선 같이 돌아야만 할 때가 있다. 설혹 그 톱니가 불의의 이빨을 가졌다 하더라도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이렇게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지금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모든 힘의 주인이므로 그 중심에는 반드시 인간이 있어야 한다.

    25시는 인간성이 말살된 극한의 시간이지만 그래도 여명의 동쪽이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결국, 소설 속에서 모리츠가 겪는 불행의 연속은 휴머니즘을 일깨우기 위한 역설적 사건들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일생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호소하면서 서구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게오르규의 인간존중 사상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세상을 만드셨고 인간이야말로 지고지순한 존재’라고 가르쳤던 그의 아버지는 20년이 훨씬 넘은 낡은 사제복을 걸친 프롤레타리아 성직자였다.

    작가로서의 자질은 시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시대적 상황에 의해 자신의 생일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게오르규는 조국 루마니아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연민을 느끼며 살았다고 술회한다. 그런 그에게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처럼 성인의 세례명을 갖지 못한 그에게, 일생을 관통하는 한마디 말을 남긴다. ‘너 자신이 성인이 되라. 성인이 된다는 것은 적을 사랑하는 일이며 고난의 가시밭길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 게오르규는 다섯 번이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전국 각지를 돌며 강연을 하고 ‘한국 찬가’라는 작품까지 남겼다. 그는 서구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동양의 정신문화 속에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25시의 어둠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는 문명의 톱니가 인간에게 묻는다. 너희는 무엇으로 내 이빨에 맞설 것인가?

    이현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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