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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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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25시] 49기 이한얼 (2) 주제파악

  • 기사입력 : 2017-03-31 14: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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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만심은 인간이 자기 자신을 너무 높게 생각하는 데에서 생기는 쾌락이다" - 스피노자

    경남신문의 수습기자가 된 후 나는 많은 것을 덜어냈다. 착각, 자만, 약간의 자신감과 요즘 관리가 소홀했던 꽤 많던 뱃살까지. 이것들을 덜어낸 후 많은 것이 늘었다. 우선은 기자라는 직업을 대하는 내 자세가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변했고, 면학(勉學)의지가 아주 많이 늘었다. 내가 소화해내는 주간 독서량도 늘었다. 술도 조금 늘었다. 예전엔 소주 3잔이 한계였다면 이제는 죽었다 생각하면 4잔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또 내 벨트의 남은 칸 수가 늘었다. 면접을 대비해 샀던 '신상'양복이 벌써 커져버렸다. 체중은 줄었지만 좀 더 '무거운' 사람이 됐다.

    입사 전에 나는 제법 잘난 맛에 살았다. 첫 회에서 밝혔듯 나는 내 나름의 위기를 꽤 잘 극복했다. 공부도 하니까 됐다. 그렇게 서서히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타성에 젖어가고 있었다.

    입사 이후 첫 동행교육에 나는 마산 동부경찰서로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 내심은 흥분됐던 것 같다. 드디어(출근 고작 10일차) 선배들이 하는 '진짜 기자'의 업무를 경험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흥분된 마음을 감추려 애쓰지 않고 마산 동부서로 출근했다. 이 날 선배는 개강시즌을 맞아 대학가 원룸촌에 허위매물이 판친다고 하니 실태를 한 번 파악해보라며 나를 홀로 대학가로 보냈다. 나는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리라 결심하고 비장하게 대학가로 향했다.

    원룸 매물 광고가 수천 수백 장이 붙어있는 게시판 앞에서 서성이는 한 남성을 목격했다. 나는 호기롭게 그에게 향했고, 원룸 허위매물 등에 대해 수십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귀찮아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끈질기게 인터뷰를 마치고 나는 그가 했던 말들을 수없이 되뇌며 기록해 선배에게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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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는 나의 참패였다. 나는 기사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했고, 인터뷰에 응한 시민의 이름과 거주지 등 기본적인 정보는 아예 간과하고 있었다. 난 그와 사담을 하며 시간을 버린 것이다. 내가 한 인터뷰는 기사에 쓰일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얼굴이 달아오르며 식은땀이 흘렀다. 애써 외면하기만 했던 내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나의 그럴듯한 포장을 뜯어놓은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까지 나는 '순간의 쾌락'에 취해 별 것 아닌 성과에도 스스로를 높여왔다. 잘난 맛에 살아오던 내가 이제는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기자로서 나는 아직 무엇도 아니다. 입사 후 지금까지 늘어난 것들에 대한 자만을 버리고 배움에 임해서 언젠가는 선배들처럼 현장을 장악할 때까지, 양복 뿐 아니라 내 '신상'구두 밑창이 닳도록 쫓아가며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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