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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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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기자 25시] 49기 이한얼 (1) 운동하던 마산 촌놈, 펜을 들다

  • 기사입력 : 2017-03-23 14: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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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1월 13일, 경남신문 수습기자 최종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 석 자를 확인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마침내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소위 청년 취업 빙하기에 운 좋게 취직한 기쁨에 취해 며칠을 만끽했다. 그렇게 허송세월도 지쳐갈 때 즈음 나의 26년을 돌이켜 봤다. 걸음마 떼고부터 나의 인생은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대변되겠다. 중학교 1학년 때 내 성적은 중위권을 맴돌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재능이 없던 것이 아니라 공부가 재미없었던 것 같다. 공부에 흥미도 느끼지 못했고, 어린 마음에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터라 유야무야 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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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생 시절부터 수영, 테니스, 육상 등 친구들이 많이 하는 종목에 편승해가며 종목은 바뀌어도 운동은 꾸준히 했다. 고교시절 육체적으로 제일 힘든 훈련 기간을 보내며 악만 늘어갔다. 체력은 늘었지만 성과나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갑소'하며 그만둘 정도도 아니었다. 여태 해온 것이 아까워서였는지 절대 공부만은 하기 싫어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운동을 계속했고 체육학과로 진학했다.
     
    욕심 많던 대학시절, 친한 친구 하나와 프로 권투선수 데뷔를 꿈꿨다. 내가 운동하던 체육관에서 유산소 운동기구는 코드 뽑힌 러닝머신이 전부였다. 전원 꺼진 러닝머신 손잡이를 붙들고 오직 내 두 다리만으로 기구를 굴려야 했다. 우리는 이 낡은 러닝머신을 '고통'이라 불렀다. 1라운드 3분간 눈앞이 노래질 때까지 기구를 굴리고 쉬는 시간 30초 동안의 토악질. 그렇게 3~5라운드를 반복하면 다리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제대로 서있지를 못한다. 이렇게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면 그때서야 나와 친구는 글러브를 끼고 링에 들어서서 치고받으며 하루를 마무리 했다. 나는 내가 그렇게 운동선수로 늙어갈 줄 알았다.
     
    대부분의 세상사가 그렇듯 생각처럼 쉬이 되는 것은 매우 드물다. 요추 4,5번과 천추 1,2번에 디스크라는 객이 들었다. 척추관협착증과 척추관탈출증에 퇴행성이라는 명사가 붙어 스물둘의 나이에 7~80대의 허리를 갖게 됐다. 수차례 신경성형술 등의 시술을 받고 물리치료를 해도 격렬한 운동은 안 된단다. 그렇게 내 오랜 친구 운동을 떠나보냈다. 차라리 잘됐다. 후련했다. 더는 내 몸 고생시키지 않고, 또 목에서 넘어오는 닭 가슴살을 물과 함께 억지로 삼키지 않아도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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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학과로 전과했다. 공부란 것이 묘하다. 암만 배우고 익혀도 어렵다. 그러나 몸이 힘들진 않았기에 무작정 열심히 했고 성적도 꽤 나왔다. 흐르는 시간을 쫓아 진로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차에 '기자'라는 직업을 접하게 됐다.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공익을 위해 힘쓰던 기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는 친구에게 묻고, 인터넷 카페도 뒤져가며 무작정 공부했다. 다행히 운동을 그만둔 후 1년여 캐나다 어학연수 경험이 있어 토익 점수가 나쁘진 않았다. 무작정 공무원 7급 국어책 사서 외우고 문제풀기를 하루 12시간. 남는 시간에는 논술학원에도 다니며 무식하게 준비했다. 기자가 정확히 어떤 업무를 맡고 돌아가는 시스템이 어떤지도 부끄럽지만 몰랐다. 너무 새하얀 것도 단점이었는지, 날 받아주는 스터디도 없었다. 내 방식이 통할지 아닐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생각할 시간도 겨를도 없었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지역 대표지인 경남신문 입사를 꿈꾸며 구독신청을 하고 닳도록 읽었다. 노력에 운이 더해졌는지 나는 경남신문 제49기 수습기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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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신문 제49기 수습기자(왼쪽부터 이한얼, 조규홍, 박기원).
     
    가끔 적당한 이슈거리 몇 개 정도 얹어가며 위태롭게 이어지던 내 인생에 첫 '특종'을 안았다. 이제 나는 진짜 기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이전과 같이 무식하지만 우직하게 나아갈 것이다. 운동선수를 꿈꾸던 마산 촌놈이 이제는 펜을 들었다. '기자는 낮은 곳에 귀 기울이고 비판의 칼날은 위로 향할수록 날카로워야 한다'는 드라마 속 대사처럼 기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정진하겠다.?

    이한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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